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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께서 쓰신 책을 가지고 있다.

[도서] 외국인 회사에서 꼭 필요한 영어 (테이프 2 포함)

이분의 스토리가 잘나오는... 역시 대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알고 있는 대우사람들 영업 잘하고, 어디가서든 꼭 살아남는...
세계는 넓고 할일도 많다고 외치던 김우중회장님이 생각나는건.. ^^

개인적으로 김우중 회장님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대우 출신들에게 애정이 있다.

그런데.. 회사를 너무 자주 옮기는것은 아닌지..
매년 옮기시는것 같아 보인다... 이분.. 뭐 커리어야..
영어 공부할때.. 독하게 악착같이 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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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남 "3,000 시간 연속 공부로 영어 정복"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제스프리 임규남 상무

[ 2007-03-02 오후 6:02:31 ]

대기업의 영업사원으로 시작했다. 지방 소읍의 사무실을 기점으로 홍보담당 책임자까지 참 열심히 달려왔다.

그리고 닥친 IMF의 위기는 세일즈 능력만 믿고서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외국인 회사에 발을 들여놓게 하는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죽어라 영어와 영업만 하면서 지금은 판매능력도 인정받고 영어능력도 인정받아 외국인 계열 회사의 임원급까지 올랐다.

그 흔한 외국 연수조차 가지 않고도 아주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외국인 회사에서 꼭 필요한 영어와 관련된 책까지 저술했고, 해외 영어연수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글로벌 기업인 제스프리 인터내셔널 한국지사의 임규남 상무를 2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났다.

외국인 회사의 직책과 연봉 계산법

▶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은 어떤 회사이며 상무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 제스프리는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키위를 해외에 공급하고 마케팅을 하는 다국적기업이고 저는 한국지사에서 근무를 하면서 유통영업마케팅 부분을 책임지고 있어요. 국내에 뉴질랜드 키위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마케팅 하는 그런 업무를 하고 있지요.

▶ 식품을 수입해 판매하면 어려운 일이 있지요?

- 아무래도 식품은 부패하기 쉽고 적기에 공급을 하지 않을 경우에 제품의 상태가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최적의 제품, 최고의 품질을 고객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외국인 기업의 직책은 어떤가요?

- 한국 직급이라고 하는 상무니 대리니 과장이니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고객들 사이에 편하게 부르기 위해서 저희끼리 쓰는 용어고요, 사실 외국인 회사에서는 우리 한국 직급보다는 직책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 사람의 직무범위와 권한 등을 나타내는 ‘Job Position’이라는 용어를 쓰지요.

▶ 연봉을 측정할 때도 일의 능력에 따라서 하나요?

- 네, 그렇습니다. 근무연한이나 본인이 불리는 직급, 직책하고는 거의 내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맡은 직무범위와 그 사람의 성과에 따라서 급여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죠.

▶ 모든 일은 영어로 해야 하는 건가요?

- 저와 함께 일을 하는 지사장은 뉴질랜드 사람이고, 아태지역의 총괄책임자는 대만분입니다. 그리고 회사의 회장은 호주분이고, 스텝들은 대부분이 호주와 뉴질랜드 분이기 때문에 영어가 유일한 대화수단이죠.

▶ 대화하고 일하시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신가요?

- 다소 지장은 있어요. 원어민이 아니라서 대화에 항상 집중해야 하죠. 모국어는 집중하지 않아도 알아듣지만 업무와 회사에서 진행되는 프레젠테이션, 이메일은 다 영어라서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업무하는데 힘들어요.

▶ 한국직원은 없나요?

- 한국지사의 정직원은 6명이고 대부분의 업무를 외주를 주어서 수입을 하고 마케팅, 여러 가지 판촉업무를 대행시키고 있습니다.

▶ 84년에 대학에 입학하셨는데 전공이 무엇이고, 사회생활은 언제부터 하시게 됐나요?

-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하기 두 달 전에 대우그룹에 입사를 하고 군대에 갔어요. 군대에 있는 동안은 휴직으로 처리되고 맹호부대라 불리는 수도기계화 보병사단에서 장갑차부대 소대장을 했었어요. ROTC를 했지요. 취업문제가 해결되어서 군대 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어요. 제대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복직해서 근무를 시작했어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충남 홍성으로의 첫 발령

▶ 발령은 어디로 받으셨어요?

- 첫 근무지가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대우전자 지사에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논산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시골에서만 자랐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사회생활은 서울에서 하고 싶었어요. 시골에서 배우지 못한 여러 가지 부분들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었거든요. 당연히 대우에 들어갔으니 서울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 낙심해서 인사부서를 포함한 경영진들에게 간절히 요청을 했지요. 하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죠.

▶ 신입사원이 인사발령이 나면 그냥 가야지 일종의 저항 아닌가요?

- 처음에 인사부서 담당자에게 제 상황을 다 말씀을 드리고 위에 부서장까지 면담을 하고 나중에는 부사장님까지 면담을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어요. 선처를 바라면서 서울역 앞의 대우빌딩에서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3일간을 보냈지요. 결국은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선배의 조언으로 홍성으로 내려갔어요. 다음에 훌륭한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고객들을 직접 접할 수 있는 현장업무를 신입사원 때 충실히 쌓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내려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리고 2년 반 후에 서울에 자리가 나서 올라오게 됐어요.

▶ 좋은 상사를 만나신 것 같네요. 홍성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 대리점 영업을 했었어요. 그때 당시는 가전제품을 주로 대리점을 통해서 판매하는 유통구조를 가졌었거든요. 그래서 영업을 하는데 대우전자에서 생산되는 모든 가전제품을 고객에게 유통하는 영업 관리업무를 주로 했었지요.

새로운 도전을 향한 자극제, ‘너 지방대 나왔지? 잘리면 갈 데는 있냐...’

▶ 가시기는 싫었더라도 그 경험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셨을 것 같아요.

- 제가 그때 당시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경력관리상 그리고 업무를 배우는 과정 중에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입사할 당시는 나름대로 전공도 살리고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뭔가 더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강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 당시에 제가 영업의 기초를 탄탄히 닦을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가 됐었거든요. 돌이켜보면 너무 감사한 기회였죠.

▶ 서울에 올라와서는 계속 영업을 하셨나요?

- 기획부서에 발령이 되어서 기획업무와 마케팅전략업무를 하다가 나중에는 홍보 관련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 그러다가 IMF가 온 거군요. 그때 당시 직위가 어떻게 되셨어요?

- 과장으로 일하다가 IMF가 왔는데 당시 대우전자는 정부로부터 빅딜을 강요받는 상황이었어요. 여러 가지 기업들을 통폐합하는, 정부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상황이었는데 통합한 더 큰 회사의 직원이 되는 것과 퇴사하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었지요. 후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저희보다 더 큰 회사에 대우전자가 팔리는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었어요.

▶ 이직을 하신 동기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겠군요.

- IMF 전에 새로 부임한 이사님이 계셨는데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갑자기 화를 내시더라고요.‘너 거울 좀 봐라, 네 얼굴 때깔이 나보다 더 좋잖아, 너 지방대 나왔지? 잘리면 갈 데는 있냐...’ 꾸중을 듣고 집에 와서 곰곰이 고민을 해봤지만 도저히 감이 안 와요. 다음날 선배가 부르더니 이야기를 해 주어서 알았어요. 사람들은 이사님이 퇴근을 하는 기준으로 퇴근을 했는데 저는 이사님이 계시던지 안 계시던지 제 일이 다 끝나면 퇴근을 했거든요. 그래서 남들보다 퇴근을 좀 빨리하는 편이었는데 아마 이사님에겐 깊은 자극을 주었나 봐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대우의 최고 자리에 오를 때까지 뼈를 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가족의 잠든 모습을 보니 마음이 혼란하고 그때부터 외국인회사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준비를 했어요. 저의 역량을 좀 더 발휘할 수 있는 곳을 한번 쯤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최초로 하게 된 것이지요. 그 후로 정확히 일 년 후에 IMF위기가 왔고 우연히 화장실에서 신문을 보는데 질레트 코리아에서 영문으로 채용광고가 났더라고요. 어떤 자격의 어떤 사람을 뽑는지 사전을 찾아보니 영업경험이 있고 국내 기업에서 영업성과를 많이 낸 사람을 찾는 광고였어요. 그래서 지원을 하게 됐죠.

영어와 영업의 차이, 그리고 ‘화장실 공포증’

▶ 질레트 코리아에 들어가셨을 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부끄럽게도 영어가 안 되던 시절이라 시중에 나와 있는 영문이력서 작성법과 영어 인터뷰를 일주일 정도 공부를 하면서 표현들을 많이 인용하고 줄줄 외웠어요. 이력서를 제출하고 일단은 서류전형에서 1차 합격을 하고 3번의 면접을 봤는데 웬만한 인터뷰의 질문과 답을 외우고 갔어요. 그런데 상무님 한 분이 예상 밖의 질문을 해서 당황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의 일과를 영어로 말하라는 거예요. 떠듬거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영어는 잘 안 되지만 영업은 자신 있다고 말해버렸어요. 한국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거라면 기회를 달라고 자신감을 보였죠. 그랬더니 오히려 후한 점수를 주셨고 마지막 면접까지 갈 수 있었어요. 마지막에는 다행히도 예상 질문지의 내용이 나와서 잘 통과가 됐지요.

▶ 대기업에서의 경험도 입사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겠어요.

- 저의 대기업에서의 영업경험과 기획업무, 홍보업무, 여러 분야에서 근무했던 것이 가산점이 된 것 같아요.

▶ 입사 후 영어 때문에 생긴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 저는 희귀한 병이 생겼어요. 제 스스로 ‘화장실 공포증’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상하게 화장실에만 가면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는 현상이 생겼어요. 호주인 사장님이 옆자리였는데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영어로 말을 거는 거예요. 매일 다양한 질문과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들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긴장을 해서 나중에는 화장실에만 가면 의지대로 조절이 안 되는 사태가 생겼죠.

▶ 어떻게 영어를 공부하셨는지 저도 너무 배우고 싶어요.

- 일을 하면서 외국어를 습득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도전입니다. 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죠. 처음 질레트에 입사하던 1999년도는 회사에 업무성과를 내야 해서 오로지 업무에만 신경을 썼어요. 일 년이 지나고 자리가 잡힌 다음에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죠. 늘 가족들과 한국말로 대화하고, 한국어로 된 신문과 방송을 보고, 만나는 고객들이 거의 모두가 한국분이고 이런 제한된 환경에서 영어를 습득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였어요. 그러다 우연히 동시통역사로부터 3,000시간 이론을 듣게 됐어요. 언어학자들이 언어습득과정을 여러 가지 모형을 들어서 설명을 하는데 그중에 하나의 이론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이 어느 특정한 언어를 습득하려면 특정기간 동안에 최소한 3,000시간에 연속적으로 노출되어야만 기본적인 학습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 3,000시간이면 도대체 얼마예요?

- 하루에 여덟 시간씩 학습을 하면 일 년이고, 하루에 네 시간씩 학습을 하면 2년 정도 걸리는 시간이죠.

영어정복을 향한 3,000시간 도전기

▶ 우리가 중, 고등학교를 비롯한 십 수 년을 영어를 배우는데 왜 안 될까요?

- 거기에 시간적인 큰 함정이 있어요. 중, 고등학교를 비롯해서 우리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착각을 하는데 실질적으로 따지면 700시간이 채 안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수업시간에 한 시간 정도 듣는 거죠. 연속적으로 학습을 하는 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학습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방학이면 영어와 단절이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하다, 안 하다가 반복 돼서 십 년 이상을 한다 해도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이 그 이론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3,000시간을 연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어떤 특정언어에 노출을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그 언어에 대한, 그게 영어이든 말레이어든 한국어든 간에 기초적인 언어학습의 준비가 끝난다는 주장입니다. 저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론을 믿고 나름대로 실천을 했어요.

▶ 어떻게 실천을 하셨어요?

- 우선 엑셀을 이용해서 3,000칸을 만들었어요. 일을 하면서 3,000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당시는 외국인 회사로 자리를 옮겼고 영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직급이 차장으로 입사를 했는데 임원으로 가느냐, 못 가느냐의 기준은 업무능력보다는 영어가 더 결정적인 좌우를 하지요. 임원이 되면 아무래도 외국인 상사 내지는 외국인 CEO들과 대화하는 기회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대로 정체할 것인가 아니면 외국인 회사의 임원이 되어서 보다 더 넓은 세계경영의 현장을 배울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고, 3,000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입사 2년차부터 영어 사냥을 시작 한 거죠.

▶ 선생님도 없이 혼자 하셨는데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면서 3,000시간을 채우셨어요?

-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어요. 예를 들어 아침에 화장실 가면 3분 정도 시간이 남는데 그 시간을 영어 학습에 사용했고 출, 퇴근시간을 온통 영어 학습에 사용했어요. 이동하는 시간의 가치를 영어 학습으로 가치의 전환을 시도한 거죠. 또, 점심식사 후의 자투리 시간과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 잠자리에 들기 전 반복적으로 노출시켰어요.

▶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 아내와 충분히 대화하고 내린 결정이라 내조를 잘해줬지요.

▶ 3,000칸의 어느 정도를 가니까 들리던가요?

- 벽에 붙여놓고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반절쯤 채워졌는데도 들리지 않고 잘 안 돼서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일단 다 채워놓고 나중에 평가를 해보자 맘을 먹고 쉼 없이 했지요. 그랬더니 3,000칸을 다 채워갈 즈음에 희한하게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면서 저도 모르게 표현할 수 있는 양도 늘어나고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드는 생각이 언어라는 것이 특정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시간을 그런 환경에 노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거구나 하고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죠.

해외연수, 조기유학... 독인가? 약인가?

▶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다 적용할 수 있는 건가요?

-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요즘 특히 직장을 구하는 분이거나 여가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외국어를 습득하는 아주 적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영어가 이제 글로벌시대가 가속화되면서 국제공용어가 됐고, 영어를 피해갈 수 있는 직장인들이 사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갈수록 외국에서 오는 고객들, 외국의 기업들과 부딪치면서 일해야 할 기회가 그만큼 자꾸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어차피 영어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영어에 강하게 한번 부딪쳐서 영어를 정복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요.

▶ 그렇다면 해외연수가 제일 빠르지 않나요?

-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해서 해외에 가면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거라고 믿고 계십니다. 하지만 외국에 나갔다 오신 많은 분들을 봤는데 어떤 분들은 십 년을 거주했는데도 일상대화밖에 못하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한번은 외국유학을 다녀온 동료와 회의에 참석을 했는데 회의 내용을 잘 이해 못 하는 것을 보고 나중에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학교를 미국에서 다녔지만 한국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한국문화만 즐기고 외국어 습득이 외국에서도 스트레스가 돼서 피했던 거예요.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학습자의 의지가 제일 첫 번째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영어를 효과적으로, 체계적으로,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요.

▶ 조기유학은 어떻게 된 건가요. 영어만 확실히 해오면 된다고 부모님들이 이런 얘기들 하시거든요.

- 요즘 많은 학부모들이 영어가 곧 경쟁력이다, 그래서 글로벌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권국가로 일찍이 보내야 한다고 강한 믿음에 사로잡힌 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안타까워요. 그래서 책도 발간했는데요,

▶ ‘해외연수, 조기유학 독인가? 약인가?’란 책이네요.

- 제가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례들을 연구하고 조사했습니다. 조기유학을 가는 자녀들의 성장과정과 다녀와서의 적응 정도, 영어의 숙련 정도를 비롯해 유학을 가지 않았는데도 국내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더 잘하는 사례 등을 지난 2년간 조사해오면서 내린 결론은 영어 자체가 한 개인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될 수 없다는 거예요.

다시 쉽게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대략 13가지 요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직의 리더십이라든가 환경의 적응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런 것들이 대략 13가지 정도가 되는데 여러 가지 역량, 그 핵심적인 역량 중에 한 가지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겁니다.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의 일부예요. 그 많은 언어 중에서 하나가 영어고, 커뮤니케이션을 구성하는 요소는 그 삶의 태도나 용모나 발표능력이라든가 여러 가지 것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글로벌 리더에게 필요한 핵심역량은 따로 있다

▶ 일에서 영어는 작은 부분이라는 말씀이시네요.

- 언젠가 일간지에서도 본 기억이 나는데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과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취업률이 수치적으로 큰 차이 보이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해외에 조기유학을 갔을 경우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문제들 특히, 기러기 아빠들 또 여러 가지 가정에 따라오는 문제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잘 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자녀분을 해외로 연수 보낼 생각은 없으세요?

-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하나 있는데 해외연수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 이런 배짱과 뚝심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해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걸까요?

- 아버님은 내성적이고 대단히 성실하게 일하셨던 분이고 어머님은 강인한 인내를 지니신 분이셨어요. 아마 어려서부터 어머님의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보고 배웠던 것 같아요.

▶ 어머님이 화장품 외판원도 하셨다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우셨어요?

- 제가 어렸을 적에는 부유한 편이었는데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아버님이 광주에 투자한 것이 잘 못 돼서 큰 위기를 맞게 됐죠.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어머님이 화장품 외판원부터 시작해서 콩나물도 키우고 경제적으로 5남매를 지원하기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저희 어머님은 단 한 번도 슬픈 내색을 하시거나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하셨어요. 오히려 신앙심이 두터우셔서 이런 경제적인 시련을 통해서 우리 5남매, 우리 가족이 더 결속되고 더 큰 인물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형제 곡물팽창주식회사는 인생의 좋은 밑천

▶ 대우에 들어가시기 전에 사업을 하나 하셨네요. ‘형제 곡물팽창주식회사’ 이게 뭔가요?

-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어려워진 가정경제를 일으켜보고자 형과 동생과 함께 뻥튀기 장사를 했어요. 적당한 이름을 붙이기가 그래서...(웃음) 충남 서산의 골목귀퉁이에서 시작을 했는데 당시 돈을 좀 벌어서 형과 동생이 사업자금으로 쓸 수 있었지요.

▶ 그때부터 그런 정신이 있었군요. 형님과 동생은 지금 무슨 일을 하세요?

- 형은 화가입니다. 미술을 하면서 강원도 춘천에서 입시전문 학원을 하고 있고 동생은 나름대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 저도 3,000시간을 노출시키면 영어가 될까요?

- 저는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연령, 인종, 출신에 전혀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영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없다 누구는 영어를 잘한다, 못 한다 능력적인 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 Can you speak English? 가 아니고 Do you speak English? 가 맞는다는 뜻인가요?

- 네 맞습니다. 외국인들조차도 영어를 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영어를 하느냐 안 하느냐 묻지요. 사실 영어를 하고 안 하고는 저희의 환경에 따른 저희들의 선택적인 상황이거든요.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영어를 하는 것이고 영어를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라면 영어를 안 하면 되는 것이거든요. 누구든 연령에 상관없이 학력에 상관없이 의지만 있으면 영어는 본인이 시간만 할애하면 충분히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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