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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이 사람] 다국적 제약업체 바이엘의 아·태지역 사장 이희열씨
‘감동 경영’으로 중국 뒤흔드는 한국인 CEO
중국인 직원 1600명 제주도에서 단합여행, 영업사원 1200명에 한국산 승용차 지급
부임 후 중국 내 연간 매출액 50% 늘어… 6000개 제약업체 중 성장률 1위

‘아스피린’을 판매하는 다국적 제약업체 바이엘헬스케어의 아ㆍ태지역 총괄사장 겸 중국법인 사장은 한국인 이희열(41)씨다. 이 사장은 지난 11월 12일 제주도에 특별한 손님을 데리고 찾아왔다.

바이엘헬스케어 중국법인의 전 직원 1600명과 함께 5박6일간 제주 신라호텔에서 단합대회를 가졌던 것. 회사 경비원과 운전기사까지 모두 참가한 이례적인 행사였다. 여행 경비만 50억원 넘게 지출했다.

이 업체는 한류 가수인 동방신기와 이정현을 제주도로 초청, 중국 직원을 위한 특별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 사장은 제주도를 떠나기 전 ‘중대 발표’를 했다. 영업직 사원 1200명 모두에게 한국산 현대 라비타 승용차를 한 대씩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업사원 전원에게 승용차를 지급하는 일은 중국 제약업계 사상 처음이다. 그것도 중국산 차량이 아닌 외제차를 선물한 셈이다. 그는 또 영업실적이 우수한 사원 20명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1300만원씩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중국 사원의 평균 연봉은 300만원 정도. 중국의 물가 기준으로 1300만원은 한국에서 1억원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이 사장은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파격적인 경영을 할까? 제주 신라호텔에서 만난 그는 헐렁한 청바지에 평범한 스웨터 차림이었다. 머리는 군복무를 갓 마친 사람처럼 짧았다. 기자에게 200원짜리 ‘야쿠르트’를 마시라고 건네는 모습은 ‘잘 나가는’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예상 이미지와는 달랐다.

“제가 양복을 입고 특급호텔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다가와 묻습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요. 호텔 직원처럼 보인답니다. 태국이나 캄보디아에 가면 자기네 나라 사람인 줄 알고 현지어로 말을 걸어오죠.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호텔에 가면 경비원이 기사 대기실로 안내합니다.”

이 사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의 경영 실적은 외모와 달리 수수하지 않다. 이 사장은 미국에서 대학과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다국적 제약업계에 16년간 몸담았다. 그는 특히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탁월한 실적을 내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 다국적 제약업체 호주법인에서는 부임 1년 만에 매출 성장률을 업계 1위로 끌어올렸고, 이 회사의 한국법인 사장을 할 때도 성장률 1위의 기록을 냈다. 그는 2005년 바이엘헬스케어에 스카우트돼 중국법인 사장으로 부임했다. 중국 제약시장은 연간 20% 성장하는 황금시장이다. 이 때문에 내로라하는 다국적 제약업체가 모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바이엘헬스케어는 세계 제약업계 16~17위 기업이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6위를 달리고 있다. 이 사장이 부임한 이후 연간 매출액이 48% 늘어 중국의 6000여개 제약업체 중 성장률 1위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올해 매출액은 약 3000억원. 바이엘헬스케어 아ㆍ태지역 전체 매출 중 30%를 차지한다. 그는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7월 아ㆍ태지역 15개국을 총괄하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단합대회를 하는 바이엘 중국 직원들.
비결이오? 아주 작고 조그만 데 있습니다. 많은 CEO가 말로는 ‘인재 경영’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인재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사장이 직원에게 연말 카드를 보냈는데 사인도 없고 상투적인 문구만 인쇄돼 있다면 그 직원이 어떤 생각을 할까요? 휴일에 등반대회나 단합대회를 여는 사장은요? 회사 회식을 왜 저녁 때 해야 하나요? 고객이나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요.”

이 사장은 작년 11월 창 밖을 보다가 우연히 실외 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추위에 떠는 모습을 발견했다. 당장 점퍼를 여러 벌 구입했다. 그리고는 직접 찾아가 전달했다. “점퍼를 지급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장이 직접 찾아가 전해줬다는 점이 중요해요. 점퍼 몇 만원 안 합니다.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해요. 그런데 이후 직원들이 사장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더군요.”

이 사장은 IMF 경제 위기 당시 한 외국계 제약업체의 한국 사장으로 근무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 역시 상사로부터 “30% 구조조정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한국의 경제 위기는 우리 직원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사태이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잘해주면 반드시 실적으로 돌아온다”고 주장했다. 한 술 더 떠 “당신 월급부터 10% 깎으면 내 월급 50% 깎고 직원 월급 30% 깎겠다”고 버텨 구조조정을 막았다.

이 사장의 다음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그는 한국 직원과 직원 가족을 모두 데리고 해외 여행을 떠났다. 고객이 줄어 발을 동동 구르던 국내 항공사는 전세기를 써 줘서 고맙다며 감사패까지 수여했다고 한다. 직원의 임금을 깎기는커녕 20% 인상했다. 영업사원에게는 승용차를 한 대씩 나눠줬다. 직원들은 당시 회사의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듬해부터 이 회사는 매출액이 급증, 3년간 3배가 늘었다.

이 사장는 “CEO의 고객은 직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고객을 어떻게 감동시키는가에 회사의 실적이 달려 있다”며 “제약시장도 결국 영업과 마케팅 싸움인데 사람(직원)이 성패를 가른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바이엘헬스케어는 중국 진출 10주년을 맞아 주요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 이 광고에는 ‘임직원 일동’이라는 상투적인 문구 대신 중국 직원 전원의 이름을 빽빽이 실었다. 사장의 이름도 같은 크기로 들어갔다. 이 사장은 인사부에 지시해 이 날 신문을 대량 구매한 뒤 직원 개개인의 이름에 밑줄을 그어서 나눠줬다.

▲ 제주 호텔에서의 환영 만찬
그는 첫 직장이었던 미국 제약업체 머크(Merck)사의 레이먼드 길마틴 회장의 영향을 받았다. 머크는 세계 1위의 제약회사였다. 길마틴 회장은 당시 최고 연봉을 받는 CEO였고 헬리콥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그는 매년 직원들에게 손수 쓴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고, 직원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기억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비원과 청소부에게도 손수 커피를 따라 주면서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머크사는 전 세계에 직원이 6만명에 이른다. 이 사장은 “입사 초기 길마틴 회장이 ‘자네는 5년 뒤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라고 묻기에 한국 사장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에 ‘한국 사장을 하기까지 ○년 ○개월 남았네. 열심히 하고 있겠지?’라는 내용을 담아 보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한국과 호주에서 CEO로 있을 때는 직원이 800명 미만이어서 개개인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보냈는데 중국은 직원이 많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며 “800명에게 각기 다른 내용의 카드를 보내려면 하루 1~2시간씩 두 달은 꼬박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중국인 직원을 깔보지 말아야 합니다. 임금이 낮다고 인격까지 낮은 것은 아닙니다. 중국은 성장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현재의 중국 수준에 맞추면 곧 낭패를 볼 것입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직원을 대우하는 것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대우한다고 생각해야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 사장은 “신입사원 중에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한국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족도를 물어보면 대부분 입을 다문다”고 말했다. 그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는 중국인이 많지만 한국 회사에서 근무한 다음에는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대와 달리 선진 경영을 하는 회사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어를 잘한다고 경영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직원에게 먼저 ‘중국말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솔직히 양해를 구한 뒤 임금·복지 등 실질적인 문제에 귀를 기울이면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직원들이 제주도 호텔에 도착하기 전 방마다 카드 한 장씩을 놓았다. 카드 안에는 “가족이 함께 오지 못해 미안하다.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는 데 보태라”는 글과 함께 현금 5만원씩을 넣었다.

이 사장은 중국 사장으로 부임한 뒤 사장 차를 독일제 아우디에서 현대 에쿠스로 바꿨다. 바이엘헬스케어가 후원하는 중국 의사협회 세미나도 유럽이나 미국 대신 한국에서 열었다. 이 회사의 아ㆍ태지역 총회도 내년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직원 단합대회의 장소 역시 태국·필리핀의 휴양지가 물망에 올랐지만 제주도를 선택했다. 이 사장은 “비 등 한류 스타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한국에 가면 이런 연예인을 만날 수 있다’고 설득했다”면서 웃었다.

“단순히 한국인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중국이 배울 점이 많은 나라예요. 중국과 격차가 너무 큰 나라에 가서 기념사진이나 찍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장의 이번 한국행은 쉽지 않았다. 태국·필리핀은 대사가 직접 회사로 찾아와 적극적인 세일즈를 한 반면 한국은 비자 발급조차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장의 ‘감동 경영’은 단순히 직원에게 잘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과 감동을 주는 마케팅 전략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Marketing Works(마케팅은 효과가 있다)’ 등의 경영 서적을 펴냈다.

이 사장은 서울 여의도고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대 학부와 국제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머크사와 BMS제약 등을 거쳤다. 태권도 5단의 유단자이며 요리에도 관심이 많아 3000권의 요리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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