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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타리의 즐거움은 사실을 기반으로 그 속에 사람과 삶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있다. 다큐멘타리는 나에겐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유혹과도 같은 장르이다.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한편의 다큐멘타리를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저자가의 놀라운 글솜씨로 풀어내고 있다.
잠시 들린 서점에서 책을 잠깐 펼처보고 온몸에 흐르는 전율은 도저히 책을 한번에 읽어내지 않은면 안될정도로 강렬했다.

페르마의 정리를 풀어내기 위한 수학자들의 열정이 고대의 피타고라스 부터 역사의 각 단계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수학의 난제가 하나 풀리기 위해 350년동안 수학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관여를 했는지.. 그 놀라운 발전을 담고있다.

어려운 수학도 이해 가능할 정도로 풀어놔서 읽기엔 전혀 힘들지 않다...

꼭 읽어보길..  이러저런 별볼일 없는 성공학이나 자기처세술 책에 시간들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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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300년간 못푼 수학문제 7년 걸려 풀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지음
 □ 더 읽어볼 과학책
◆ 유용하 기자의 책으로 읽는 과학 ◆    

(왼쪽부터)피에르 드 페르마, 앤드루 와일즈
"임의의 두 정수를 각각 n승(n은 3 이상의 정수)해 더한 결과는 다른 제3의 정수의 n승으로 표현될 수 없다.

 즉 x^n+y^n=z^n(n≥3)을 만족하는 정수해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x, y, z 중 하나가 0이거나 모두 0인 경우는 제외한다."



간단해 보이는 이 문장 하나가 20세기 말까지 수많은 수학자들이 골머리를 앓았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전설적 수학천재인 레온하르트 오일러, 세기적인 여성수학자 소피 제르맹 등 세계적인 수학자들마저 자신의 평생 업적과 명예를 걸고 뛰어들었던 이유는 페르마가 이 문제 밑에 써 붙여놓은 주석 때문이다.

"Cuius rei demonstrationem mirabilem sane detexi hanc marginis exiguitas non caperet(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지만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다)."

경이적인 방법으로 풀어냈지만 단지 귀찮기 때문에 세상에 발표하지 않겠다니 후세 수학자들을 약 올리기 위한 페르마만의 독특한 유머방식일 수도 있다. 페르마는 아마추어 수학자이기도 하지만 게으름 때문에 자신의 연구를 출판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 정리`도 페르마의 장남인 클레망 새뮤얼이 아버지의 업적을 후세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디오판토스의 아리스메티카 복사본 여백에 휘갈겨쓴 주석을 수집해 출간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의 업적은 영원히 사라져 수학의 발전을 300년 이상 늦출 뻔했다.

수학자들이 마지막 정리 증명에 매달렸던 또 하나의 이유는 독일의 수학자 파울 프리드리히 볼프스켈(1856~1906)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최초로 완벽하게 증명한 사람에게 상금으로 10만마르크(약 20억원)를 제시했다.

그리하여 수학자들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필즈상`에 버금가는 명예와 돈이 걸린 `볼프스켈상`이 1908년 만들어졌다. 단 2007년 9월 13일까지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는 사람에게만 준다는 조건이 붙었다. 마감기간이 있는 수학문제에 커다란 상금과 최고 수학자라는 명예가 걸린 것이다. 수학자라면 이 유혹을 누가 마다하겠나.

입자물리학 박사이면서 과학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사이먼 싱이 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페르마의 정리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은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니라 1995년 페르마의 정리를 완벽하게 증명해낸 미국 프린스턴대 앤드루 와일즈 교수의 연구과정을 따라가며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수학책이라고 하면 수식이 많아 어렵고, 재미가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이 책은 (수능 출제위원들이 흔히 하는 얘기처럼)중ㆍ고등학교에서 성실하게 공부했던, 또는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수식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거침없이 읽어갈 수 있다.

쉽게 읽어갈 수 있다고 해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까지 쉽고 평범한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정리의 악명은 1958년 작가 아서 포기스의 `악마와 사이먼 플래그`라는 단편소설에서까지 나타난다.

작품에서는 악마가 24시간 안에 사이먼 플래그의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악마가 사이먼의 영혼을 갖고, 실패하는 경우에는 사이먼에게 10만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사이먼은 한참 고민을 하다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정말 맞는 겁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악마는 질문을 듣는 동시에 전 우주를 날아다니며 대답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하루가 지난 뒤 파김치가 돼 나타난 악마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이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봐, 자네 혹시 이거 아나? 다른 행성에 사는 최고 수학자들도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거야. 토성에 갔더니 수학에 도가 텄다는 굉장한 친구가 있더군. 마치 기둥에서 삐져나온 버섯처럼 생긴 녀석이었지. 편미분 방정식을 암산으로 술술 풀어낼 정도로 대단한 녀석인데, 그 친구도 그 문제만은 완전히 두 손 들었대."

와일즈는 10대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만난 뒤 수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정하고 1993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자신의 증명과정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증명과정에서 사소한 오류가 발견돼 증명을 기대했던 사람들과 와일즈 본인을 실망시켰지만 곧 수정과정을 거쳐 완전한 풀이를 제시해 1997년 볼프스켈 상을 받는다. 7년여의 연구성과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와일즈의 성공에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는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혼자서 외로운 연구를 한 끝에 나온 성과이기 때문이다. 볼프스켈상이라는 정상 등정의 영광은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단독 연구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과학의 경향은 기초든 응용이든 복잡성이 커지면서 다른 학자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와일즈가 만약 다른 학자들과 협력연구를 했더라면 페르마의 정리는 더 빨리 풀렸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페르마의 정리 해결이 인류에게 주는 혜택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수학자들은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나노기술이나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처럼 눈에 띄는 결과를 내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학의 발전을 위해 풀리지 않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생각하면 `수학은 어려워`라고 투덜대기보다는 좀 더 애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피에르 드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

= 근대 정수이론과 확률론을 창시하고 좌표기하학을 확립한 페르마는 17세기 최고 수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페르마가 발견하고 스스로 증명했다고 말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1995년 앤드루 와일즈와 리처드 테일러의 공동연구로 증명돼 1995년 `수학연보(Annals of Mathematics)`에 발표되기까지 300년 이상 수학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부유한 피혁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마는 원래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가 됐고, 툴루즈 지방의 청원위원, 칙선위원 등 법률가이자 행정가로 활동했다. 사실 페르마에게 수학은 취미였다.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그는 데카르트와 메르센 등 과학자들과 편지를 통해 연구성과를 토론했지만 결론으로 얻어진 정리만 보여주고 증명방법을 풀이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더욱이 연구내용을 출판하지 않아 후대 수학자들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주기도 했다.

특히 페르마의 연구성과는 정수론뿐만 아니라 미적분학에서 빛난다. 연속곡선에 접선을 긋는 방법으로 처음 출발한 문제를 그는 극대ㆍ극소의 극한값의 문제로 유도해 미분의 개념에 도달했다. 또 이를 광학에 응용해 `최단시간의 원리`로 불리는 페르마의 원리를 발견하는 등 빛의 반사와 굴절법칙을 유도해내 역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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