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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현재 새 주인을 기다리는 매물만 수십 개다. 이들 기업 인수를 위해 수많은 기업이 목숨 걸고 달려들고 있는 와중이다.

물론 대형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M&A를 무리하게 성사시킨 결과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기업도 꽤 있는 때문이다.

차입금과 이로 인한 이자비용 급증으로 재무구조가 나빠지는 것은 기본이다. M&A를 통해 급성장한 금호산업, STX, 이랜드의 부채비율은 국내 제조업체 평균의 두 배를 웃돈다. 물리적 통합은 했지만 화학적 결합에는 실패해 시너지를 낳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랜드의 비정규직 파업 사태처럼 예상치 못한 돌발 악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리스크가 있음에도 M&A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찾으려는 기업들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단기간에 외형을 키우고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데 M&A만 한 대안이 없다고 믿어서다. M&A를 통해 금맥을 캐려는 기업들과 그 와중에 소화불량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기업들 모습을 통해 M&A 성공의 길의 단초를 찾아보고자 한다.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인터내셔널, 우리금융 등.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이들 대형 매물 10여개 중 한 개만 손에 넣어도 재계 순위를 뒤집을 수 있을 판이다.

신성장동력 확보와 재계 판도 뒤집기를 꿈꾸며 이미 많은 기업들이 인수전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대형 매물뿐 아니다. CJ투자증권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금융가뿐 아니라 화장품, 유통, 택배업계 등에도 소소한 M&A 재료가 널려있다.

특히 유통가는 요즘 M&A 소문으로 횡행하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든 GS그룹과 한화그룹이 자금 마련을 위해 각각 GS리테일과 GS홈쇼핑, 한화갤러리아를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있는 때문이다.

올 들어서만도 홈플러스가 이랜드그룹으로부터 홈에버를 사들이고 유진그룹이 자신보다 덩치가 몇 배 큰 하이마트를 가져오는 등 이미 M&A 대전이 몇 차례 있었다.

지난해로 범위를 넓히면 이야기거리는 더욱 많아진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까지 집어삼키면서 M&A 업계 최대 강자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오랜 라이벌 그룹 한진을 제치고 재계 8위로 올라섰다. 두산그룹은 세계 1위 건설중장비 그룹인 밥캣 등 3개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국내를 넘어 글로벌 M&A까지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3~4년 사이 국내 기업들의 M&A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국내 부실기업을 헐값에 사들였다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는 것을 지켜본 게 단초가 됐다. 이후 두산, STX, 한화그룹 등이 M&A를 통해 그룹 주력 사업군을 바꾸고 재계 순위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본 기업들이 이제는 너나없이 M&A에 사활을 걸고 달려드는 상황이다.

심지어 한동안 M&A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삼성그룹마저 이윤우 부회장 시대를 맞아 본격적인 M&A 대전에 뛰어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결과적으로 2003년 10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국내 M&A 거래액이 지난해에는 약 40조원으로 증가했다.

2007년 국내 M&A 거래액 40조원

국내뿐 아니다. 전 세계 M&A 시장 역시 초활황이다. 2000년 IT 거품 붕괴 이후 위축됐던 M&A 거래가 2007년 약 4만건, 5조달러로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시장이 뜨거워진 것 못지않게 한 건 한 건의 인수전도 치열하다.

현재 나와 있는 매물 중 가장 먼저 새 주인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전초전부터 뜨겁다. 올해 최대 대어로 평가받는 세계 3위 조선업체인 만큼 당연지사다.

7월로 예정돼 있는 대우조선해양 M&A 전에 출사표를 던진 기업만도 현재 포스코를 위시해 두산, 한화, GS그룹 등이 있다. 여기에 현대중공업그룹 등 잠재 경쟁자 또한 한둘이 아니다.

저마다 자사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을 때의 시너지를 부각시키기에 정신이 없다.

인수전에 앞선 사전 정보전도 보통이 아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심규상 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을 기조실 사장으로 영입했다.

심 사장은 대우조선 해양플랜트 사업본부장, 경영지원본부장, 재무총괄 부사장을 거쳐 대우조선 단체급식과 호텔, 연수원, 사원 아파트 관리를 맡은 자회사 ㈜웰리브의 사장과 고문을 지낸 인물.

명목상으로는 신규 사업 타당성 검토 업무를 총괄하도록 한다는 것이지만, 심 사장이 회사 경영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재무 분야를 담당했던 만큼 이번 영입이 두산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고 있는 M&A. 그러나 M&A가 무조건 최대 선(善)인 것만은 아니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많은 컨설팅 기업들이 M&A 성공률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AT커니는 93년부터 96년까지 수행된 115개 대규모 M&A의 거래 전과 2년 후의 총주주수익을 조사한 결과 58%의 M&A가 주주가치를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2002년에 발표된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조사 결과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95년에서 2001년에 수행된 302개의 거래 중 61%가 주주가치를 감소시켰을뿐더러, 인수 기업의 성과는 산업 내 경쟁사 대비 4%포인트, S&P500 대비 9%포인트나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2007년의 맥킨지 발표는 다소 고무적인 점도 있다. 97년에서 2000년 사이에 수행된 M&A 중 65%가 주주가치를 증대시키지 못한 반면, 2003년에서 2007년에는 57%가 주주 가치 증대에 실패했다는 것.

어쨌든 실패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는 한 셈이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의 M&A가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가열 하게 뛰어든 M&A가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할 수 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잠깐용어 참조)다.

실제로 M&A가 약이 되기는커녕 독이 되는 바람에 고생한 세계적인 기업들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때 ‘꿈의 결합’으로까지 불렸던 다임러사와 크라이슬러사의 인수합병은 이제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독일 다임러 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는 공동 생산과 연구개발(R&D)을 표방하며 98년 합병을 추진했다.

그러나 완고하면서도 서열을 중시하는 독일 기업문화와 유연성과 성과 중심인 미국 기업문화가 충돌하면서 주요 경영진 사퇴, 우수 인력 이탈 등이 발생했다. 결국 이는 근로자 사기 저하로 이어졌고 당연히 실적은 악화됐다.

7월로 예정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둘러싸고 4개 그룹이 출사표를 던졌다.

결국 다임러사는 400억달러를 들여 인수한 크라이슬러를 단 60억달러에 재매각해버렸다.

최근 3~4년간 바람을 탄 국내 M&A 업계도 슬슬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M&A로 성장해온 대표적 그룹들인 금호아시아나그룹, 유진그룹, 이랜드그룹이 줄줄이 M&A 소화불량을 심하게 앓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진그룹은 하이마트 인수로 악화된 유진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유진기업, 고려시멘트, 기초소재 등 3개사를 합병하고 유휴자산을 매각해 3000억원을 마련한다는 경영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랜드그룹은 아예 홈에버를 2년 만에 재매각했다.

‘할인점업계에서 새로운 신화를 써보겠다’던 장담은 온데간데없고 ‘패션과 아웃렛 분야에 매진하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고 떠들어댄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그룹은 투자했던 자금을 고스란히 회수함으로써 자금 손실을 보지는 않았지만 인수 후 통합전략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결과 이미지 급락이라는 결과물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금호아시아나 역시 ‘유동성 위기’ 소문에 괴로워하는 와중이다. 게다가 그룹 지주사격인 금호산업과 대우건설, 금호석유화학 등 주요 계열사들 주식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부작용 불구 건수 계속 증가

지난해 한때 3만5000원을 넘어서던 대우건설 주가는 최근 2만원대에서 힘겹게 턱걸이하고 있다. 금호산업 또한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20% 이상 주가가 떨어졌다.

이처럼 M&A의 부작용이 목도되고 있음에도 M&A 건수가 계속 늘어나고 인수전 또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다.

오상준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M&A가 성공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장점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에 매혹돼 많은 기업들이 낮은 성공률을 도외시하고 M&A에 뛰어든다는 의미다.

오 연구위원은 또 “주주들의 새로운 성장엔진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는 것도 경영진으로 하여금 M&A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하는 요인”이라 덧붙인다.

M&A 성공률과는 별도로 어쨌든 M&A 활성화가 시대적인 요구인 만큼 이제 M&A 후유증을 줄이고 그 성공조건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때다.

현재 소화불량을 앓고 있는 한국 M&A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성공조건에 관한 진지한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잠깐용어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경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승리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 여러 상황에서 활용되지만 주로 M&A 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기업 인수에 경쟁이 붙어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인수한 후 후유증에 시달릴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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