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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붙을 수밖에 없었던 조조와 원소


여포, 원술 등을 무찌르며 하남지방 최대 군벌이 된 조조는 원소가 지배하고 있는 하북을 쳐서 중원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원소 역시 유주의 공손찬을 무찌른 후 하북 지방의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중원 통일에 눈엣가시 같은 조조를 정벌하고자 하였다. 조조는 일단 화해의 계책으로 황제께 상주하여 원소를 태위에 임명하였지만 원소는 그것을 거부함에 따라 전쟁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조조는 당시 원소보다 불리한 점이 많았다. 군사의 수도 원소보다 훨씬 적었고, 기동력과 돌격력이 좋은 기병보다는 보병이 군대의 주를 이루었다. 게다가 배후의 적도 많았다. 비록 허도를 위협하던 장수가 항복했지만, 형주에는 유표가 있었고 서주에는 세력이 미약하지만 위협적인 유비와 강남의 손책이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이를 극복한다. 우선 강남 손씨 일가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다. 200년 자객의 습격을 받고 손책이 젊은 나이로 급서하면서 어린 그의 아우 손권이 대를 이었다. 손권은 아직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나라를 수습하기 위해  조조와 동
맹을 맺었다.


또한 200년 1월 조조는 원소가 아들의 병 문제로 꾸물거리는 틈을 타서 배후의 유비 세력을 와해시키고 명장 관우를 얻었다. 원소가 군사를 움직이고자 할 때는 이미 조조가 장애물을 모두 제거하고 전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때였다.

하북의 명장 안량과 문추는 황하 강변에서 죽다


조조와 원소가 대치한 관도 주변은 황하가 흐르는 화북 평원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요충지였고 황제가 머물고 있는 허창(許昌)과 개봉(開封)의 요새와 마찬가지인 곳이다. 조조에게는 필사적으로 지켜야 하는 곳이었고 원소에게는 필사적으로 뚫어야할 곳이었다. 원소는 일단 선봉장 안량으로 하여금 황하를 건너 황하 연안의 백마진(白馬津)을 포위하라고 명한다.


안량은 정예병을 이끌고 순식간에 황하를 건너 백마진을 포위하였다. 원소의 기습 공격에 당황한 조조는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치는 것처럼 하다가 서쪽을 친다.)의 계책을 쓴다. 백마 서쪽의 연진(延津)에 많은 군사를 보내 원소의 본군을 연진으로 끌어들인 다음, 조조 자신은 정예병으로 백마를 기습공격하였다. 이 기습 공격은 적중하였다. 하지만 상대는 원소의 오른팔과 같던 맹장 안량이었다. 안량은 여포 휘하에서 귀순해 온 조조군 장수 위속과 송헌을 간단히 베고, 대부의 대가 서황마저도 20합 끝에 퇴각시켰다. 그러나 이 때 혜성같이 나타나 안량을 불과 1합도 못 되서 벤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조에게 잠시 항복한 유비의 동생 관우였다.


 안량의 죽음에 분노한 원소는 문추를 선봉장으로 삼아 연진을 공격하게 하고 유비를 후군으로 삼아 강 건너에서 문추를 지원하게 하였다. 문추 역시 기세 등등하게 연진을 공격하고 조조의 선봉장 장료, 서황을 퇴각시키지만  조조의 기만책에 군사를 잃고 관우에게 죽임을 당한다.

원소 관도에서 대패하다.


 안량과 문추를 잃은 원소는 실의에 빠져 본거지 업성으로 퇴각한다. 하지만 저수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10만 대군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순식간에 관도로 진격한다.


이에 조조는 관도에 견고한 진지를 쌓고 원소와 대적했다. 원소는 토산을 쌓아 조조군을 내려다 보며 공격했으나, 조조의 발석차라는 무기에 토산이 허물어져 내렸다. 원소는 계속 싸움을 걸어왔지만 조조는 싸움에 응하지 않고 반 년동안 버텼다. 당시 조조는극심한 군량난에시달렸다. 관도에 비축된 곡식 뿐만이 아니라, 후방의 허창의 곡식마저도 동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를 알아챈 원소군 모사 허유는 원소에게 배후를 돌아 허창을 급습하자고 건의했지만 원소는 자신의 계책만을 믿고 그 의견을 묵살시켜 버렸다.  이에 화가 난 허유는 밤에 몰래 원소 진영을 탈출해 과거 친구였던 조조에게로 귀순한다. 조조는 이에 기뻐하며 허유에게 물었다.
 

 

조조: 자원(허유의 자)은 내게 알려줄 계책이라도 있습니까?
  허유: 명공께서는 군량을 얼마정도 비축하고 있습니까?
  조조: 넉넉잡아 1년을 버틸 수는 있겠지요.
  허유: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명공께선 바닥난 군량 때문에  걱정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조조: 아니, 그것을 어떻게.....? 혹 자원께서는 내게 줄 비책이 있습니까?
  허유: 저의 짧은 계책이지만, 오소(烏巢)를 공격하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소(烏巢)는 관도 서북쪽에 위치한 원소의 군량창고이다. 원소는 많은 군량을 본진이 아닌 오소에 두고 장군 순우경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하지만 순우경은 용맹만 믿고 자만에 빠져 오소의 방비를 허술하게 하였다. 조조는 허유의 계책에 따라, 직접 별동대를 이끌고 오소를 습격하였다. 원소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었다.


당황한 원소는 장합과 고람으로 하여금 조조가 없는 관도를 급습하게 하는 한편 별동대를 보내어 오소를 지원하게 하였다. 하지만 장합과 고람은 적의 기습을 받아 조조에게 투항하였고 별동대 역시 조조군에게 패배하였다. 조조는고삐를 늦추지 않고 원소의 본진에 총공격을 가하였다. 결국 원소는 10만대군 중 9만여 명을 잃고 황하를 거쳐 여양으로 퇴각한다. 조조는 기세를 타고 북상하여 황하 북안의 창정에서 다시 한 번 원소를 깨뜨린다.

결국  202년 원소는 울화병으로 한 말이나 되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 사세오공(四世五公)의 명문집안에서 태어나 하북에서 기반을 닦아 조조와 천하를 겨룬 원소, 그가 패한 원인은 편협한 마음씨였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자부심에 그는 자신의 부하마저도 무시하고 신뢰하지 못했다. 전풍, 저수 같은 뛰어난 모사들과 안량, 문추같은 용장들이 있었음에도 그는 그들을 이용했기만 했고 자신의  잘못된 계책만을 믿었다.


이에 반해 조조는 부하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 자신이 뛰어난 전략가지만 허유 순욱 등의 책사들과 계책을 논의했다. 또한 부하들에게도 관용의 정신을 베풀었다.


관도 전투가 끝난 직후 원소의 진영에서 조조 장수들의 밀서들이 발견되었다.원소 군에 몰래 항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장수들이 이들을 참수하라고 권했지만 조조는 편지들을 모두 불태우면서 말했다.
"나 역시 원소의 강대함 앞에서 걱정했거늘 하물며 저들이라고 항복할 생각을 품지 않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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