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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프리랜서도 등장… 회계사ㆍPDㆍ기자ㆍ영화감독 직종까지 확대 추세 기업들 아웃소싱에 평생 직장 사라지자 희망자 늘어… 신분 불확실해 법적 보호 못 받아

서울의 한 유명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말 병원 개업을 앞두고 있는 이모(35ㆍ경기 분당)씨는 병원 개업 전까지 ‘프리랜서 닥터’로 활동할 계획이다. 이씨는 “어떤 병원이든 개업 초기에는 고객이 많지 않다”며 “내 병원 매출액이 일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 파트타임 닥터로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의료인은 자신이 개설하거나, 자신이 고용되어 있는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행위가 허용됐지만 올해부터는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의사도 프리랜서로 뛸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마취 전공인 이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네 번 정도 특정 병원에서 진료를 하면 150만~200만원 정도의 진료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치과 분야에서 교정 등 다른 전공의 경우는 비슷하게 일하고 200만원 넘게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프리랜서 닥터로만 뛰어도 개업한 사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의사 시대가 열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프리랜서의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고, 프리랜서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도 급증하고 있다. 브랜드 관리사, 푸드 컨설턴트 등 새로운 분야의 프리랜서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너 컨설턴트 김연운(35ㆍ여)씨는 차장 직급의 대기업 교육 책임자였다가 프리랜서로 전환한 경우. 아이가 두 살을 넘기면서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때가 왔다”고 판단, 대기업 차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김씨는 회사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프리랜서의 길을 개척했다. 대기업 차장 시절 연봉 6500만원을 받던 김씨의 현 수입은 연간 1억원 안팎. 수입도 늘었지만 아침 시간에 아이와 함께 있을 시간도 벌게 됐다고 한다. 매너 컨설턴트는 아직 국가 공인자격증이 나와 있진 않지만, 전문 양성기관의 교육을 수료하면 활동할 수 있다.

칠순을 앞둔 서상록 전 삼미그룹 부회장은 강연 프리랜서로 전국을 다니고 있다. 서씨는 “나는 걸어다니는 벤처기업”이라며 “프리랜서처럼 좋은 직업이 없다”고 말한다. 서씨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주최한 강연회에 연사로 초청돼 청중에게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강연을 한다. 서씨는 “과거에 어떤 자리에 있었든 과거를 잊고 새 일을 시작해야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란 특정 조직에 속하지 않고 업무 혹은 시간 단위로 계약을 맺어 일을 하는 자유직업종사자를 뜻한다. 기획사나 방송사에 속하지 않은 연예인이나 아나운서 등이 대표적 프리랜서라 할 수 있다. 프리랜서라는 말은 중세에 유럽을 떠돌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용병을 지칭하는 프리랜스(Free Lance)에서 비롯됐다. 보수가 좋고, 이길 자신이 있으면 누구든 주인으로 섬겼던 이들 용병을 영국인은 프리랜스(free lance ㆍ자유로운 창)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살에 안정된 직장이었던 궁정 음악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어 팔던 모차르트도 대표적인 프리랜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프리랜서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정확한 통계는 잡히지 않지만 특수고용 형태 근로자를 중심으로 최소 20만명 가량의 프리랜서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특수고용 형태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자영업자와 근로자의 중간 형태에 속하는 근로자. 기업에 프리랜서 인력을 공급하는 에이전시 관계자는 “특수고용직에 속하지 않는 인원을 감안하면 실제 활동 중인 프리랜서는 20만명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며 “프리랜서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프리랜서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프리랜서 에이전시인 서울프리랜서그룹의 조환필 부장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시장 규모만 1조원 이상이고, 프리랜서 웹디자이너 시장은 1000억원 규모”라며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와 웹디자이너만 합해도 6만명 이상이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의 증가 추세는 프리랜서 에이전시의 성장세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프리랜서 에이전시인 ‘크릭앤리버코리아(Creek&River Korea)’에는 2005년 2000명, 2006년 3000명의 신규 프리랜서가 등록했다. 이 에이전시에는 현재 영화감독, 방송작가, 웹 프로그래머, 만화가, 프로듀서 등 6000여명의 프리랜서가 소속돼 있는데 동원호 사건을 취재했던 김영미 PD, 만화가 이현세·황미나씨, ‘댄서의 순정’을 연출했던 영화감독 박영훈씨 등도 이곳에 프리랜서로 등록돼 있다. 2001년 설립 후 매년 20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는 크릭앤리버코리아는 2006년 13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서울프리랜서그룹에도 현재 1만2800여명의 프로그래머와 5만2000여명의 각 분야 프리랜서가 등록돼 있는데 1996년부터 매년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여왔다고 한다.

프리랜서에게 일자리를 연결시켜 주고 수수료를 받는 에이전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미국의 경우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그 수도 수십 개에 이른다. 우리나라 에이전시가 업무의 각 부문별로 팀 단위 인력을 제공하는 수준이라면 미국 프리랜서 에이전시는 업무에 필요한 모든 인력을 완벽하게 제공하는 토털매니지먼트사로 발전했다.



프리랜서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이 ‘다운사이징(Down Sizing)’을 위해 정규직 채용을 줄이고 아웃소싱(OutSourcing) 비율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는 관리 비용이 필요하지 않고, 프로젝트에 따른 비용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정규직을 채용하는 것보다 이익이다.

지난해 2월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가 국내에서 IT 아웃소싱 서비스를 이용하는 63개 정부기관 및 기업을 대상으로 ‘국내 IT 아웃소싱 시장환경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정부기관의 아웃소싱 인원비율은 61.8%, 제조·물류 부문의 아웃소싱 비율은 57.7%로 나타났다. 프리랜서 에이전시 관계자는 머지않은 미래에 기업의 관리직과 핵심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를 프리랜서가 수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표적 아웃소싱 업종인 방송국의 경우 현재 아웃소싱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방송국의 경우 이 비율이 80%, 일본 방송국은 70%에 육박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방송국이 아직도 아웃소싱 비율을 늘릴 여지가 많은 셈이다. 미국 방송사의 경우 보도와 편성을 제외한 업무 대부분을 프리랜서가 담당하고 있다.

크릭앤리버코리아 육연식 에이전트 본부장은 “채널 수가 늘어나고, TV 외에도 인기를 끄는 다른 미디어가 많이 생기면서 광고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며 “기업이 핵심인력 외에는 아웃소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왔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회계사, 의사, 기자, PD, 작가, 배우, 화가, 음악예술, 스포츠, 디자이너 등의 계통에서도 프리랜서가 주력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것도 프리랜서 선언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다. 조기퇴직 바람이 불면서 회사에 계속 있을 것인가, 전문성을 살려 프리랜서로 뛸 것인가를 고민하는 직장인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프리랜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원인에는 악화된 기업고용 환경도 한몫 했다. 취업포털 잡링크에 따르면 직장인의 68.5%, 즉 10명 중 7명 가량이 부업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업의 대부분이 주말과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한 프리랜서 업무다.


프리랜서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에 대한 정확한 법적 정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프리랜서가 노동자인지 개인사업가인지조차 아직 규정되지 않은 실정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프리랜서는 아나운서, 작가 등 문자 그대로 어느 사업장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의 계획에 따라 일하고 그 대가로 수입을 얻는 자를 의미한다”며 “따라서 이들은 일반적인 근로자(정규·비정규 근로자 포함)로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현재 노동부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소속되어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프리랜서의 경우 자영업자 성격이 많다고 생각되나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처럼 한 사업장에 상당 부분 전속돼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형태를 띠고 있다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서 법적 보호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프리랜서도 세금을 낸다. 회사와 계약된 금액에서 세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 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세청 소득세과의 한 관계자는 “세법상 프리랜서라는 말은 규정돼 있지 않다”며 “프리랜서는 자기 스스로 인적 용역을 제공해 소득을 얻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프리랜서는 세법상 개인사업자로 볼 수 있지만, 국세청에서 프리랜서를 따로 분류해 파악할 수는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는 부동산 소득 등을 합한 종합소득을 신고할 뿐 프리랜서로 일한 근로소득만을 따로 신고하지 않는다.

노동법을 전공한 임종률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근로자를 하얀색으로 보고, 자영업자를 검은색으로 본다면 프리랜서는 회색으로 볼 수 있다”며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성격을 모두 다 갖고 있어 프리랜서를 근로자로 규정하기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4단독 김익환 판사는 7년간 방송사 구성작가로 근무하다 퇴직한 김모(34·여)씨가 ‘구성작가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므로 퇴직금을 달라’며 모 방송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구성작가는 다른 법령에 의해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 받고 있지도 않고 보수 결정이 개인의 경력과 프로그램의 난이도에 따라 이뤄질 뿐 근로시간과 무관한 점 등에 비춰볼 때 회사에 의해 종속성이 인정될 정도로 지휘·감독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프리랜서에 대한 법적 규정이 모호한 현실 때문에 프리랜서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리랜서는 갑자기 수입이 끊길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한다. “프리랜서 뛰면서 ‘가장’ 노릇을 하긴 힘든 세상”이라는 게 상당수 프리랜서의 고백이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수석 연설문 작성자였던 대니얼 핑크(Daniel H. Pink)가 5년 전 자신의 저서 ‘프리에이전트의 시대’에서 “프리에이전트가 미국 경제의 새로운 상징”이라고 역설했지만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프리랜서의 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걸려야 할 것 같다.

김경수 주간조선 기자 kimk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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