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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이론(trust theory)


개념
신뢰에 대한 논의의 다양성으로 인해 다양한 개념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들 논의를 종합해 보면 신뢰는 다음과 같은 개념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위험의 감수(risk-taking)이다. 위험이란 손실이 이득을 초과할 가능성, 또는 인지된 손실의 가능성으로 신뢰는 신뢰대상이 기대대로 행위하지 않을 배신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둘째, 신뢰는 낙관적 기대를 구성요소로 한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신뢰자가 두려워하는 상황보다는 원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리라는 기대에 근거해 있다. 셋째, 신뢰는 자발성을 전제한다. 외압에 의해 강제된 신뢰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배신의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신뢰대상에게 신뢰자 자신의 미래(미래의 이익)를 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할 때 신뢰는 다음과 같이 개념화된다. “불확실성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신뢰대상이 신뢰자의 이해에 부합하도록 행동하리라는 주관적 기대와 그러한 기대를 근거로 신뢰대상의 행동에 신뢰자 자신(신뢰자의 이해)을 맡기려는 자발적 의지”이다.
특히, 신뢰의 개념화와 관련해 중요한 논점은 신뢰의 개념적 다차원성(multidimensionality)이다. 신뢰의 다차원성은 내용적 다차원성과 대상적 다차원성으로 대별된다. 전자는 신뢰를 인지적, 감정적, 행동적 차원의 다차원적 구성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인지적 차원이란 신뢰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근거로 어떤 대상은 믿고 어떤 대상은 불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지적 선택의 과정을 말한다. 감정적 차원은 신뢰대상에 대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등의 느낌으로 신뢰대상에 대한 감정적․정서적 유대감으로 구성된다. 신뢰의 행동적 차원은 신뢰대상에 대한 의존성의 증대의지를 말한다.
신뢰의 대상적 다차원성이란 신뢰의 대상이 인간일 수도 있고 조직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체제, 사회 및 제도 모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의 다차원성이다. 신뢰의 대상적 다차원성의 문제는 대인간 신뢰와 체제신뢰와의 관계 설정 및 경험적 연구의 분석수준문제와 관련을 갖는다.

 

신뢰에 대한 관심증대의 배경
신뢰는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및 행정학 등 사회과학 전 분야에 걸쳐 논의되고 있다. 이처럼 신뢰가 범-사회과학적으로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이 있다. 콜맨(colemann)은 물리적 자본과 인적자본과 구별되며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으로 사회적 자본을 제시하였다. 사회적 자본은 ①거래비용을 감소시키고, ② 정보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며, ③ 도덕과 규범의 강화를 통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즉 신뢰가 있음으로써 행위자들간의 협동이 가능해지고 감시와 통제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자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의 축적은 한 사회(국가, 조직)의 경쟁력의 원천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적 자본으로서 신뢰의 중요성을 증대시키는 다양한 상황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와 그에 따른 개방경제 체제 속에서 국경을 초월한 국가간(조직간)의 협력과 제휴가 중요하게 되었다. 또한, 정보화로 인해 네트워크 조직, 가상조직이 등장하게 됨으로써 물리적 거리의 확대와 가상공간에서의 업무수행은 관계 당사자의 활동의 관찰가능성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존재양식과 지배 논리의 변화는 예전의 직접적인 통제 방식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계 당사자(행위자)의 자율적인 자기 통제가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하였다. 더욱이 자기통제가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확대되었다. 이상의 상황은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가 국가 경쟁력(또는 조직경쟁력)의 핵심변수로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에 신뢰가 무엇이며, 신뢰를 형성하고 축적하기 위한 기제와 방식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이론적 관점
신뢰에 대한 이론적 관점(접근법)은 첫째, 심리학적 관점, 둘째, 경제학적 관점, 셋째, 사회학적 관점, 넷째, 정치․행정학적 관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심리학적 관점: 신뢰에 대한 심리학적 관점은 인성론(personality)적 관점과 사회심리학적 관점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인성론적 관점은 신뢰를 인간 개인의 경험과 사회화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는 심리적 속성으로 타인(또는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로 본다. 특히, 인성론적 관점은 신뢰성향에 있어서 개인의 차이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비해 사회심리학적 관점은 신뢰를 불확실한 상황에서 타인(신뢰대상)의 행태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로 규정한다. 신뢰의 인성론적 관점이 개인의 내부에 관심을 갖는다면 사회심리학적 관점은 대인간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2) 경제학적 관점: 합리적인 행위자로서의 인간관과 공리주의적 합리성에 기초해 신뢰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은 신뢰를 상호작용의 잠재적 비용과 편익에 대한 계산에 기초한 일종의 기대로 본다. 이들 경제학적 입장은 신뢰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의 가능성보다는 계산을 강조한다. 따라서 신뢰는 부모-자식, 또는 연인과 같은 친밀한 인간적 관계가 아닌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이 근간을 이루는 경제관계에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3) 사회학적 관점: 신뢰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된다. 첫째는 신뢰의 사회적 속성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신뢰란 심리적 성향이나 경제적 선택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사회적 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적 실체로 규정한다. 둘째, 신뢰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둔다. 즉, 신뢰를 안정된 사회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 선결요건으로 보고 신뢰는 사회적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본다. 특히, 신뢰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은 위험과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신뢰를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적 제도의 창출에 역점을 둔다.
4) 정치․행정적 관점: 신뢰에 대한 정치․행정학적 접근은 정부(정책)신뢰를 중심으로 정부신뢰 또는 정책신뢰를 정치적 지지와 같은 일종의 정치적 태도로 보고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긍정적 평가적 태도로 규정한다. 신뢰에 대한 정치학적 접근의 중요한 논점은 첫째, 신뢰의 대상인 정부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와 둘째, 정부신뢰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먼저, 정부신뢰의 대상과 관련해 정치공동체(political community), 정부체제(regime), 정부당국(authority)으로 보기도 한다. 둘째, 정부신뢰의 구체적인 내용은 정부의 공정성, 정직성, 형평성과 같은 규범적 기대와 함께 정부당국자의 산출물과 관련한 능력(자질), 능률성, 효과성과 같은 성과를 포함하는 다차원적인 접근을 한다.


신뢰의 생성 및 신뢰의 유형
신뢰가 어떠한 경로와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가 하는 문제는 신뢰이론에 중요한 논점이 된다. 신뢰의 생성기제에 대한 대표적인 논의는 다음과 같다.
1) 저커(Zucker)는 신뢰의 생산양식 혹은 신뢰의 근거를 중심으로 과정-기초적 신뢰(process-based trust), 특성-기초적 신뢰(characteristic-based trust), 제도-기초적 신뢰(institutional-based trust)로 분류한다.
① 과정-기초적 신뢰: 지속적인 교환관계의 경험이나 신뢰의 대상이 반복적으로 신뢰에 부응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 형성되며 호혜성(reciprocity)이 핵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신뢰는 일시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당사자들간의 지속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신뢰대상의 행동에 대한 예측가능성으로 이는 반복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를 통해 획득할 수 있다.
② 특성-기초적 신뢰: 신뢰는 신뢰자와 신뢰대상의 특성적 유사성에 기초해 형성된다. 이러한 유사성은 가문, 종교, 성 또는 인종과 같이 한 개인이 속하는 집단의 귀속적 특성에 기반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기초적 신뢰의 경우, 이를 주고받는 당사자들간에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지역주의나 미국사회에서의 인종차별 등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③ 제도-기초적 신뢰: 제도에 기초한 신뢰는 공식적인 제도나 체제에 의해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사회의 분화와 함께 사회 구성원들간에 이질성이 높아지고 집단적 동질성에 기초한 기계적 결속이 약화됨에 따라 과정-기초적 신뢰와 특성-기초적 신뢰의 여지가 좁아진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로 신뢰의 생성은 신뢰대상의 신뢰가능성을 객관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제도나 체제에 근거하게 된다. 개인의 능력을 담보할 수 있는 공식적인 교육제도, 자격증, 졸업장, 개인의 신용을 담보해주는 보증보험, 기업의 경영능력에 대한 경영평가기관의 평가 등이 중요한 예가 된다.
2) 사피로를 위시한 그의 동료들(Shapiro, Sheppard and Cheraskin)역시, 신뢰의 근거에 기초해 다음과 같은 신뢰의 생성양식 및 유형을 제시한다.
① 저지(deterrence)에 기초한 신뢰:  신뢰대상이 배신하였을 때 그에 상응하는 제재나 처벌의 가능성에 근거한 신뢰이다. 즉 타인을 신뢰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는 만일 타인이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였을 경우, 이를 제지하고 처벌을 가능하게 할 제도와 장치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장치는 사법부와 엄정하게 운영되는 법체계를 들 수 있다. 이는 저커(Zucker)의 제도-기초적 신뢰와 일맥상통한다.
② 지식(knowledge)에 기초한 신뢰: 누군가(또는 무엇인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 신뢰대상에 대한 지식 및 정보를 기초로 한다. 이는 신뢰대상의 행동에 따라 특정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에 투자할 것인가(즉 신뢰관계를 형성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에 기초한 신뢰는 신뢰대상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신뢰로 정기적인 접촉을 통한 신뢰대상에 대한 정보의 획득이 중요하다.
③ 일체감(identification)에 기초한 신뢰: 이는 신뢰자와 신뢰대상간의 일체감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이다. 이는 저커(Zucker)의 특성-기초적 신뢰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전자가 귀속적인 특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면 일체감에 기초한 신뢰는 더 나아가 신뢰자와 신뢰대상간의 가치와 규범의 공유까지를 포함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일체감에 기초한 신뢰라고 할 수 있다.

 

평가와 전망
사회적 자본이 국가(조직)경쟁력에 핵심변수라는 인식의 확대는 신뢰 및 신뢰이론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의 증대는 다양한 형태의 연구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신뢰개념 자체의 추상성과 애매성으로 인해 여전히 개념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개념적 혼란은 신뢰에 대한 경험적 연구의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신뢰에 대한 연구의 축적을 저해한다. 따라서 신뢰의 개념적 명확화를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저-신뢰 사회로 평가되는 한국의 경우,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불필요한 자원을 낭비하고 이에 따라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식적인 제도와 체제에 대한 저-신뢰의 경향은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막는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에서 신뢰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에 대한 관심과 학문적 노력이 미흡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향후,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다양한 접근을 통한 신뢰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뢰 형성 기제 및 과정(또는 신뢰의 영향요인)은 각 국가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대인간 신뢰에 있어서 귀속적 특성(지연, 학연, 혈연)의 영향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하게 작용하리라는 추론이 가능하고 일부 경험적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신뢰의 생성에 있어서 상황론적 접근의 필요성도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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