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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는.. 분명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볼 줄 아는 눈.. 그것이 필요하다.

사람을 잘 쓰려면 프로파일러 같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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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핏기어린 눈, 내 눈에 다 걸린다
"강호순, 날 보더니 '음료수 사와라'… 이때 사주면 지는 거다"…

그는 가끔씩 ‘괴물’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강호순 정남규 유영철 김길태… 자신과 얼굴을 맞대고 짧게는 두세 시간, 많게는 대여섯 시간씩 인터뷰했던 흉악범들에 대해 굳이 인간적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권일용 경감,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흉악범들을 만나 범죄수법과 동기, 행동의 원인 등을 캐내고 탐구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사람들은 그를 ‘프로파일러(profiler)’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그가 인터뷰한 범죄자만 700명에 이른다. 대부분 연쇄살인범이나 방화범, 성폭행범 같은 중범죄자이다. 지난해 김길태나 2008년 정남규 수사 때는 직접 현장에 가서 현지 수사팀과 합류해 지원 업무를 벌이기도 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서 지난달 과학수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말을 아꼈다. 그 ‘괴물’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함부로 전하지 않았다. “만약에 한 명이라도 내 인터뷰를 보고 범죄에 도움을 얻는다면 그 죄책감은 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범죄 수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법하면 수시로 인터뷰가 중단됐다.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 “몰라도 될 일, 보지 않아도 될 끔찍한 광경을 보고 사는 게 우리입니다. 그런 범죄자들의 잔인한 수법과 참혹한 내면을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겠죠.”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전직 경찰관을 다룬 영화‘추격자’의 영화포스터 중 일부./쇼박스 제공
◇사이코 패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다

우리나라에선 언제부터 프로파일링을 시작했나.

"지난 2000년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에 범죄행동분석팀이 만들어졌고, 내가 첫 담당자였다. 그 전에는 일선 경찰서에서 지문감식을 하는 과학수사요원이었다. 절도 강도 성폭행 현장 가보면 마치 지난번에 검거된 범인이 왔다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 유사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공통된 특징을 찾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경찰은 왜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행동분석을 시작했나.

"미국은 70~80년대에 FBI에서 행동분석을 시작했다. 미국은 당시 연쇄살인이 기승을 부렸다. 프로파일링이란 말도 그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70~80년대는 치정이나 원한 아니면 먹고사는 문제가 살인의 동기였다. 그러다 90년대 중반에 '막가파' '지존파' 온보현 같은 살인범죄가 등장을 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었다. 점점 족적이나 지문, DNA가 남지 않는 사건이 많아졌다. 현장감식 요원으로서 위기감마저 들었다. 그때 연쇄살인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들이 나왔고, 대비 차원에서 행동분석팀이 만들어졌다."

―프로파일링은 어떻게 하나.

"CSI가 지문이나 족적을 뜨고, DNA 분석 등의 일을 한다면, 우리는 행동을 분석한다. 화가를 알려면 그림을 봐야 하듯이, 범인을 알려면 범죄 현장을 알아야 한다. 왜 범죄 현장이 이렇게 되었는지, 족적은 왜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의미를 찾아나가는 작업이다. 범죄자를 찾는 '오펜더 프로파일링', 사건 발생 지점을 연결해 수사를 집중해야 할 지역을 찾는 '지리적 프로파일링', 동일범에 의한 사건을 찾아내는 '링키지 프로파일링' 등이 있다."

―우리나라 프로파일러는 몇 명 정도인가.

"전국에 프로파일러가 37명이다. 지방경찰청별로 나눠 근무하고, 서울 경기는 수요가 많아 3~4명이 팀을 이룬다. 큰 사건이 나면 영남·호남·중부·수도권 등 16개 지방청에서 필요한 인원들이 결합해 팀을 구성한다. 지난 2005년에 심리학·사회학 전공자들로 특채했다. 60%가 여성이다."

―과학수사와는 다른가.

"행동 분석을 하려면 먼저 사건현장이 정확하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요즘은 혈흔의 지름만 재어도 역사입(逆射入)각도를 구할 수 있다. 그것을 실로 연결하면 그 피가 날아온 원지점(origin)이 나온다. 혈흔 각도를 분석하기 위해 과학수사요원들은 자기 피를 직접 뽑아서 무수히 실험을 했다."

―프로파일링과 과학수사를 어떻게 연결하나.

"정남규가 저지른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은 현장 혈흔을 분석하면 피해자들의 저항이 없었고 누워 있던 것으로 나온다. 강도나 성폭행 흔적도 없이 자고 있는 사람을 공격했다면, 순전히 살인을 목적으로 들어왔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연쇄살인은 우발적으로 시작되나.

"아니다. 연습을 한다. 유영철의 범행도구는 망치였다. '그 도구를 어떻게 생각했느냐'고 물었더니, '개로 연습을 했는데 칼을 사용하면 피를 흘리면서 도망을 가더라, 그래서 망치로 바꿨다'고 하더라. 일반 살인이 도구와 장소, 피해대상자 선정이 불안하고 충동적인 반면, 연쇄살인범들은 안정적이고 계획적이다."

―그래서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정남규를 기소하려니 범행도구가 없었다. 그래서 '너 네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칼을 이제 다시 볼 기회가 없다. 어디 있는지 이야기하면 내가 가져다줄게' 했더니, 범행에 사용한 도구들을 옷장 서랍 밑바닥에 다 붙여뒀다고 하더라. 절대 못 버릴 것이라고 봤던 예측이 맞았다. 그자에겐 흉기가 추억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왜곡된 인성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괴물들의 마음속은 어떤가.

"나는 조서를 꾸미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감정과 동기,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접근을 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한다. 사건이 끝나고 나면, 한 달 두 달씩 힘들다.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들, 몰입했다가 나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다. 처음 시작한 범죄분석 수사관들은 굉장히 힘들어한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범인을 인터뷰하면서 다른 범죄자를 잡기 위해 내 감정을 숨기고 다른 감정으로 대해야 하고, 그자들이 듣지 않아도 되는, 상상도 못할 잔혹한 행동 이야기를 하면서 화사하게 웃는 모습을 봐야 한다. 그런 것들이 상처로 남는다."

 수많은 범죄자의 내면을 들여다봐온 중년의 이 남자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어떤 분석을 할까.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권일용 경감은“범죄자를 알기 위해 현장을 분석하며 끊임없이‘왜 그랬을까’묻고 답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 일”이라고 말했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그건 경찰이라면 숙명 아닌가.

“분석요원들은 집중적으로 그런 놈들을 봐야 한다. 일선 경찰서에서 20년 형사 하는 동안 살인 사건이 몇 건이나 발생하겠나. 그러나 분석요원은 1년만 해도 살인사건, 연쇄성범죄 방화 범죄자를 많으면 100명씩 만나야 한다. 나는 2008년 경찰청에 오면서 면담에 직접 나가지 않게 될 때까지 7년 동안 사흘에 한 번꼴로 현장 나가고 범인들 만났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나.

“왜 우리가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지 ‘동기화’해야 한다. 피해자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봐야 한다. 유가족들에게 ‘꼭 잡아줄게’했던 약속, 그런 것이 범죄자들과의 고통스러운 만남 속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범인을 잡고 나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그 약속만 생각날 때도 있다.”

―혹시 종교를 갖고 있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우리 같은 사람은 가족과의 유대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 끝나고 우리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 되면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시간을 많이 갖는다. 가족이나 친구한테도 할 수 없는 말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살인범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일을 반복해왔다. ‘프로파일링’이라는 말을 창안한 미국 FBI의 유명한 행동분석관 존 더글러스도 “살인범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니체의 말이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괴물을 닮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처럼 생각하는 것이 그들을 잡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때가 많았다.

―깊이 빠져들다보면, 범죄자 입장에 동화될 수도 있나.

“그들 스스로도 모르는 심리적 동기를 우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찾아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캐릭터에 젖어들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고 답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경계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행동분석관은 자아와 자존감이 강해야 한다.”

―범죄자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순식간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범인을 추적하면서 점점 ‘그 화(化)’ 되어가는 것이다. 물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괴물화’되는 것에는 저항을 한다. 그 사람화되는 것을 한번 경험하고 나면 두려움도 느껴진다.”

―마치 배우들이 영화 속 캐릭터에 빠져 실제 생활에서 인성이 바뀌는 것과 비슷한가.

“다르다. 배우는 그 역할을 소화해내기 위한 것이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범죄자를 이해함으로써 또 다른 죽음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 목적이 다르다.”

―그 사람화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예컨대 정남규 사건 때 우리는 범행이 발생하던 밤 11시~아침 6시 사이 거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매일 가 있었다. 범인이 현장에서 느꼈던 소리, 분위기, 불빛, 바람, 개 짖는 소리 이런 것을 같이 느껴본다. 수사관 입장에서 안 보이던 것이 범인의 입장에서 보이는 순간이 온다.”

―여자 요원들도 나가나.

“남자건 여자건 동료와 함께 간다. 현장 사진을 놓고 계속 의미를 찾는 회의도 한다. 하루가 걸릴 수도, 이틀이 걸릴 수도 있다. 침입구와 범죄 현장, 도주 상황, 도구, 피해자 상처의 깊이, 넓이, 어떤 도구를 썼는지, 이 행동이 갖는 의미, 도주 과정을 끝없이 분석한다.”

―여자 프로파일러가 더 많은 것은 왜 그런가.

“여자들이 섬세한 것 같다. 특채로 심리학·사회학 전공자들을 뽑았는데 대부분 석박사 이상이 들어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괴물이라는 말을 스스로 많이 쓰나.

“실제 괴물은 없다. 겉보기에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사이코패스라는 것도 정상적인 사람들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서 우리와 구분 짓기 위해 만든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은 뭔가.

“연쇄살인범은 어릴 때 동물 학대나 방화 등의 문제를 안고 살아왔다. 그런데 검거되고 나서 보면 주위에선 온순하고 인사도 잘하고 착실했다는 평가를 한다. 이들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가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그런 자들을 보면 화가 나지 않나.

“냉담함을 유지해야 한다. 면담의 목적이 그 면담에서 많이 뽑아내 다음에 활용하는 것이다. 절단된 사체의 일부를 찾기 위해 범인의 집 근처 하수구를 맨손으로 뒤지고 와서도 꾹 참고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

―지금까지 만나본 범죄자 중 가장 흉악한 자는 누구였나.

“정남규였다. 결국 2009년에 살인에 대한 충동을 못 이겨 교도소에서 스스로 자살했다. 재판에서 ‘담배를 끊어도 살인은 끊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까지 했다.”

범인은 답을 알고 있다

‘범죄자들을 면담하는 것은 프로파일러들에게 중요한 작업이다. 프로파일러가 직접 범인을 잡지는 않지만, 면담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고 흉악범의 실물을 직접 봄으로써 실물에 대한 감각을 높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조망해보게 된다.’(‘마인드 헌터’, 존 더글러스)

―전국의 사건에 다 개입을 하나.

“우리는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살인, 연쇄 성범죄, 연쇄 방화, 연쇄는 아닌데 살인 중에서도 가학적인 행동, 변태스러운 특이 행동 특성이 나타나는 범죄에는 개입을 한다.”

―사건이 없을 때도 있나.

“큰 사건이 없을 때 행동분석요원들은 검거된 범죄자들을 끊임없이 인터뷰한다. 160개 항목의 질문이 있고, 심리, 성장환경, 범행도구, 범행 전 준비, 범행 후 행동 등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내용을 입력해 시스템에 넣는다. 지금까지 쌓인 자료만 5000건에 육박한다.”

―어떤 내용을 입력하나.

“범죄자의 행동을 재구성해 보면 유사 범죄의 경우 전국의 범죄분석요원들이 찾아낸 공통된 특성이 있다. 현재 잡히지 않은 용의자는 어떤 특성과 공통된 성향을 갖고 있는지 그 특성을 일선 경찰의 수사팀에 제공한다. 아울러 검거해서 조사할 때는 어떤 전략적 방법으로 심문해야 한다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범죄자들이 입을 잘 열 것 같지는 않다.

“강호순을 인터뷰할 때다. 대뜸 첫 마디가 ‘나랑 인터뷰하러 왔으면 음료수라도 하나 사와야 하는 것 아니냐’였다. 그 0.2초 순간에 ‘뭐 마실래?’라고 답하면 살인범과 프로파일러의 관계가 역전된다. 음료수를 사오라는 것은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은 사람을 통제하려는 습성이 강하다. 그래서 아동이나 여성을 통제하는 것에서 자기 자존감을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 대응했나.

“그 순간 나는 ‘내가 너와 음료수 마시러 온 것 아니다.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중압감을 줬다. 프로파일러가 심리적으로 우위에 서야 한다.”

―어떤 사람이 살인자가 되나.

“일단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용의자다. 우리는 선입관을 갖지 않으려 노력을 한다. 프로파일러는 많은 데이터가 있고 머릿속에 유형화가 되어 있어서 형태적이고 직감적인 것에만 의존하면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범인을 ‘맞힌다’는 말을 싫어할 것 같다.

“2006년 처음 살인사건을 접한 신입 프로파일러 두 명과 함께 현장에 나갔을 때다. 당시 나는 현장을 둘러보면서 ‘범인은 바로 잡힐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다음날 범인이 잡혔다. 두 사람은 내가 어떻게 맞혔는지 무척 궁금해했다.”

―어떻게 알았나.

“간단하다. 살인사건이 나고 과학수사요원이 현장에 도착하면 아수라장이다. 강력반 형사들로 북새통이다. 그런데 그날은 형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겠나. 잡으러 간 것이다.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 사소한 것에서라도 연관성을 찾아내야 한다.”

―좀 우습지만, 그런 것이 링키지 프로파일링인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에서 상관관계를 보는 시각, 패턴을 읽어내는 능력은 훈련이 필요하다.”

―어떻게 훈련을 하나.

“범죄자 면담을 하면서 ‘너는 왜 이렇게 했냐’는 행동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 범죄자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현장의 많은 것들이 해석되고 연결된다. 그래서 검거 전에 우리가 가졌던 추론과 범인, 즉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확인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훈련이 된다.”

―현장에서 배운다는 말인데.

“2000년 프로파일러로서 첫 사건이 여자를 성폭행하고, 한겨울에 옷을 벗겨 논바닥에 방치해 얼어 죽을 뻔한 사건이 었다. 그 당시 왜 여자의 옷을 벗겨 바깥으로 내몰았는지 의문이 남았다. 그런데 그해 말 다시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다른 범인을 6~7시간 면담을 했더니,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옷을 홀딱 벗은 채 쫓겨난 적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범죄 행동이든지 반드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좀더 많은 케이스를 찾기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10명 20명 50명 100명 700명까지 간 것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나.

“어릴 때 좋아했다.”

―유명한 미국 드라마 ‘CSI’나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면 대충 범인을 맞힐 수 있나.

“중간 정도 지나가면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업(業)이 그건데 보고 싶지는 않다.”

―‘CSI’에서 보면 컴퓨터를 돌려 용의자의 연령·직업·인종 이런 것들을 뽑아내는데 우리 경찰도 그런 장비가 있나.

“그건 영화다. 그 드라마는 장비회사들이 제작비를 지원한다고 들었다. 극 중에 나오는 장비의 3분의 1이나 절반 정도는 아직 현장에서 쓰지 않는 것들이다. 일종의 광고라고 본다. 수요처가 전 세계 경찰이고 무척 고가(高價)이기 때문에 만약 한 나라에서라도 그 장비를 채택한다면 대박이 날 것이다.”

 권 경감은 사진 찍는 것을 내키지 않아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건물 앞에서 그를 웃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우리는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해 현장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실제로 범인을 잡는 것은 끝없이 탐문하고 잠복하며 범인을 추적하는 일선 수사관들”이라고 했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사인’(signature)을 찾아라

―범인들 중에 의도적으로 일관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보는 패턴은 수법의 연관성이 아니다. ‘시그너처’라고 부르는 것인데, 수법과는 다르다. 커피를 마실 때 꼭 조금씩 남기는 사람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시그너처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행동이고, 범행을 완성하기 위한 수법과는 다른 것이다. 수법은 범행현장이 바뀌면 계속 바뀌는 반면, 현장에는 범행을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행동도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찾는다.”

―실제로 딱 맞아떨어진 경우가 있었나.

“사례는 많다. 2000년대 초 서울에서 발생한 토막살인 사건의 용의자 특성을 ‘평소 정리정돈을 하는 습관이 돼 있고, 냉동식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로 정의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잡고 보니 방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1년 반 정도 생선을 판매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프로파일링했나.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절단한 사체를 정돈해서 가방에 넣어 두었고, 마치 생선이나 고기를 판매할 때처럼 두겹 세겹 비닐봉지로 포장한 것을 보고 그렇게 예측했다. 그의 경우는 비닐 포장이 시그너처였던 셈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가면 범죄자들도 머리를 쓸 것 같은데.

“이 정도는 이미 다 알려져 있다. 과거 강원지역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사건인데, 마치 남자가 저지른 것처럼 성폭행 범죄로 위장이 돼 있었다. 그런데 범인은 여자였다. 물론 거기서도 우리는 범인이 여성일 가능성을 크게 추정했다. 은폐할수록 더 많은 단서와 행동과학적 증거를 남기는 역설이 존재한다.”

―범죄자들과의 숨바꼭질인 셈인데 그 자들도 학습을 하나.

“유영철 인터뷰 중에 미국의 ‘체이스 사건’을 언급하더라. 체이스는 망상에 빠진 정신병자였다. 그런데 유가 갑자기 자기는 정신병자가 아니라면서 ‘나는 체이스와 다르다’고 한 것이었다. 정남규의 경우도 압수수색팀과 함께 방에 갔더니 자기 범죄를 다룬 기사와 내 얼굴이 들어간 월간지 기사까지 스크랩해서 모아 놓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을 추적하는 동안, 그들도 학습을 하며 우리의 수사상황을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이 있어서 스크랩할 필요도 없다.”

―경찰 수사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겠다.

“유영철이는 자기 사건을 다룬 인터넷 기사에 댓글까지 달았다고 하더라.”

―요즘 발견되는 이상 징후는 없나.

“범죄 수법의 진화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과학의 발전, 인터넷 같은 다양한 외부 조건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예진·예슬 살해범은 모두 70년생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이런 흉악범들이 모두 동갑이란 것에 무슨 연관성은 없는지, 그들이 태어난 시대와 성장한 배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경찰은 어떤 범죄를 예상하나.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살인은 더 많아질 것이다. 너무 다양한 수법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됐다. 또 ‘SNS 신상털이’ 통한 범죄도 예상된다. 연쇄살인범이 자기 취향이나 목적에 맞는 피해자를 찾아내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

―왜 그렇게 예측하나.

“20~30대의 잠재적 범죄자들은 인터넷을 잘 다루고 검색에 능한 자들이다. SNS에 이런 연쇄살인범들이 들어가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과거처럼 길거리에 날뛰는 것보다 좀더 유명한 사람을 타깃으로 삼아 희생자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경찰은 이미 그런 것에도 대비하고 있다. 연쇄살인범은 반드시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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