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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토오루..
현대 일본의 현실을 읽을수 있다.

문뜩.. 히틀러가 생각나는건 왜일까?
피폐했던 독일을 극우적 파시즘으로 극복하려 했던 히틀러.. ㅎㅎ

역사는 되풀이 된다던 이야기.. 틀리지 않다.
일본의 현실은 이제 다시금 극우적 사고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는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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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토오루.. 그를 주목한다. 우리의 대중적 현실에서 토오루는 어쩔수 없는 등장인물일듯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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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토오루에 관한 기사 몇편을 살펴봤다.

역시 뉴스데일리는 믿을만한 뉴스는 아니다. 논리의 비약이 곳곳에서 보인다... 뉴스는 팩트가 중심아닌가. 거참.
암튼.. 토오루를 보면 기존정치세력과 교묘하게 선을 긋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입지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또한, 법률적 근거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괜찮은 접근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탈법적 관행을 혁파하며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권리를 정확하게 행사하겠다는 논리... 나쁘진 않다.

하지만.. 뭔가 불안하다... 통합하고 소통해서 돌파하기 보다는 무조건 싸우려 한다.
기존에 잘못된 것을 무조건 자르려 한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했다면.. 정치를 뭐하려 하나.

일본의 정치현실이 토오루같은 인물이 득세할 수 밖에 없다는게.. 어찌보면 다행이다.
우린 그런 사람을 이제 안봐도 되는데.. 

앞으로 계속 살펴보겠다.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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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후 日, 천황제 폐지하고 대통령제 도입하나 (from newdaily)

한국 언론과 정치인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집착’하는 사이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그 중 일본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급부상한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토오루의 인기 때문이다. 하시모토는 지난 21일 "총선이 앞당겨질 경우 전국적인 공천을 할 예정"이라고 언론에 밝혀 일본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시밭길 헤쳐 온 일본 정계의 ‘기린아’

2011년 11월 하시모토 토오루(橋下徹)가 오사카 시장에 당선되자 국내 좌파 언론은 ‘일본의 박원순(또는 안철수)이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하시모토를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하시모토는 안철수처럼 좋은 집안에서 자라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니다. 그의 논리와 주장도 몇 년 동안 TV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전체로부터 검증받았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 시장은 1969년생이다. 일본에서 ‘불가촉천민’이라는 부라쿠 출신으로 자라면서부터 차별을 받았다. 야쿠자였던 그의 부친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살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혼자 힘으로 당대 최고의 변호사와 정치인으로 성장했다는 점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였던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오오사카 부립 기타노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교 시절에는 럭비선수로 전국대회까지 출전했다. 고교 졸업 후 재수해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8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시모토는 대학 재학 시절 지금의 부인을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그는 공부와 생계를 동시에 해나가면서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 가죽점퍼 장사를 시작했다 실패하기도 했다. 그가 법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하시모토가 일본에서 유명해진 것은 TV프로그램 덕분이다. 하시모토는 당초 탤런트 프로덕션 회사를 상대로 변호사 활동을 하다 본인이 직접 프로덕션 소속 탤런트가 된 뒤 라디오와 TV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방송인' 하시모토는 2003년 도쿄로 진출, 니혼 TV의 법률상담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5명의 변호사가 출연해 독특한 이슈에 대해 법적해석을 내리는, 법과 코미디를 합친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하시모토는 뛰어난 언변과 빈틈없는 논리로 시청자에게 ‘쿨한 매력’을 보여줬다.

한 번은 방송에 “‘사랑하는 마지막 그 날까지’라고 새긴 다이아몬드 반지를 여자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그녀에게 차였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돌려받으려 하는데 가능한가?”라는 사연이 나왔다. 다른 변호사들은 법적인 논리를 내세워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놨지만 하시모토는 말 그대로 ‘쿨’했다.

“여기 10만 엔 있으니까, 가져가라. 남자가 쩨쩨하게…”

이런 행동은 겉치레에 집착하는 일본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무기력에 빠진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하시모토는 이후 시사프로그램·토론회·문화행사에 얼굴을 내밀면서 “일본은 썩었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영원히 어렵다”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던졌다. 하시모토는 니혼 TV의 법률상담프로그램에서 “일본의 문제는 강한 자에게 약한 것보다 약한 자에게 더 약한 ‘잘못된 미덕’에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 그가 오사카 부 지사에 당선된 뒤 처음 시도한 ‘혁명’은 ‘구제불능의 복지 시스템 개혁’과 ‘공무원 대량 감축’이었다.

“합법적이라면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경쟁시켜라”는 하시모토 정신

‘계파 정치의 철옹성’인 일본에서 무소속으로 오사카 부 지사에 당선된 하시모토는 2008년 2월 취임 첫 날 ‘오사카 부 재정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예산 1,000억 엔 삭감을 발표했다. 자신의 월급 30%와 퇴직금 50%도 삭감했다. 

TV출연 당시의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언변과 논리가 뛰어난 변호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TV출연 당시의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언변과 논리가 뛰어난 변호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시모토는 그때까지 운영하던 28개의 빈민 집단시설, 44개의 부 산하 법인을 모두 폐지하고, 일반직원 퇴직금, 비(非)상근 직원 보수, 의무교육 등에 들어가는 교육특별수당 등을 모두 삭감했다. 오사카 부 직할 주택사업과 문화 사업도 재검토하고, 오사카 부 인권협회 등 각종 시민단체와 문화단체에 대한 시 보조금을 모두 폐지했다.

오사카와 일본의 모든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문화단체 등이 “시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독재자”라고 하시모토를 비난했다. 시민단체, 공무원 노조, 생활보호대상자들이 그를 따라다니면서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하시모토는 ‘일하지 않고 남의 도움을 받는 자’를 둘러싼 ‘비즈니스’와 ‘교육을 인질로 삼은 무능한 교사’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사카 학생들의 퇴학률·범죄율은 전국 최고다. 반면 학습률은 전국 최하위다. 오사카 어린이들은 미래에 대해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다. 그 원인은 무능한 학교 선생들에게 있다.” 

“학교 선생은 평생직장이 아니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나가야 한다. 9할의 선생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1할의 놀고먹는 무능한 선생들을 퇴출(退出)해야만 오사카의 미래가 보인다.” 

“아이들에게 말로 해서 안 될 때는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능력 검증 없이 시간이 흐르면 진급하는 그런 인간들을 위해 세금을 낼 수는 없다. 애들이 그런 자를 본받으며 살아갈 미래를 생각해 보라. 승자승(勝者勝) 원칙의 경쟁이 필요하다.” 

이 같은 발언으로 하시모토는 오카사 사람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혁명’을 시작했다. ‘혁명’은 계속됐고 ‘빈민구제 비즈니스 단체’와 ‘일교조’는 점차 설 땅을 잃었다.

혁명의 두 번째 목표는 ‘무능 공무원 감축’

2011년 11월 이번에는 오사카 시장이 된 뒤에는 새로운 ‘혁명’ 준비를 마쳤다. 2011년 12월 5일 하시모토는 오사카 시청에 출근했다. 취임 전이었지만 향후 시정(市政) 방향을 밝히기 위한 아침회의를 열었다. 그의 첫 발언은 이랬다. 

2010년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그의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과 통하는 점이 많다.
▲2010년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그의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과 통하는 점이 많다.

“시청직원들의 채용경위에 대한 정확한 보고서를 받고 싶다. 채용경위에 문제가 있을 때 재시험을 통해 자격을 묻겠다.”

이 발언은 19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일갈한, “현재 위기를 맞아 정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정부 자체가 바로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명언을 떠올리게 했다. 

하시모토의 발언에 오사카 공무원들은 긴장했다. 오사카는 시민 1만 명당 공무원 수가 51.4명이라고 한다. 그 중 계장 이상 간부가 전체 공무원의 31.4%로 다른 일본 도시의 20%보다 월등히 많다. 이런 오사카 공무원들을 일러 하시모토는 ‘세금 갉아먹는 흰개미’라고 불렀다. 하시모토는 공무원의 30%인 1만2,000명을 감축하고, 퇴직한 시 공무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온 118개의 외곽단체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남은 공무원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가 됐다. 하시모토는 공무원 인건비를 1년 내 10% 삭감하고, 최종적으로 30%까지 삭감한다고 약속했다.

일본 국민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건 2008년부터 시작한 ‘혁명’을 대부분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 정계와 그 주변에서 '공생'하던 집단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일본 국민들, 좌파 시민단체와 관료주의가 만든 ‘복지천국’에 분노

하시모토는 기존 정치권은 물론 ‘자칭 시민단체’와 ‘무조건적인 복지’를 혐오한다. 오사카에는 하시모토가 싫어하는 것들이 모두 뭉쳐 있는 곳이다. 실제 2010년 5월 오사카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면 이해가 된다.

2010년 5월 일본 오사카에 입국한 푸젠성(福建省) 출신 중국인 48명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오사카 시청으로 몰려가 생활보호대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오사카에 있는 ‘자칭 친척’을 통해 합법적으로 오사카시에 거주하기로 돼 있었다. 오사카시는 외국인이라도 체류자격만 있으면 생활보호대상자에 포함시켜 준다. 

일본 현행법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남의 나라 국민이 우리나라에 오자마자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세금으로 지원을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오사카 시의 경우 2011년 7월 기준으로 15만1천여 명이 생활보호대상자라고 한다. 일본 전체로 보면 1천명당 16명이 생활보호대상자지만, 오사카는 1천명당 6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에게 드는 돈은 2010년 말 기준으로 2,916억 엔, 시 일반예산의 17%에 달한다. 결국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 때문에 경찰이나 환경미화원에게 줄 돈이 부족해 치안이 엉망이 되고 거리는 쓰레기로 뒤덮이는 일까지 생겼다. 

2010년 말 일본의 생활보호대상자는 202만 명, 가구는 146만 세대에 달한다. 단순통계로 보면 일본 인구 1천명당 16명 정도가 생활 보호대상자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예산은 연간 3조4천억 엔(한화 47조6천억 원) 가량. 우리나라 국방예산보다 더 많은 돈이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일본의 ‘자칭 시민단체’와 관료주의 영향이 컸다. 일본에서 우파나 극우는 ‘국민’이나 ‘신민’이라는 표현을 쓴다. 좌파는 ‘시민’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시민’이라는 말이 들어간 단체면 99%는 ‘좌파 조직’이라고 본다. 

일본 국민들은 ‘시민’이나 ‘국민’이란 말이 들어간 단체를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극단적인 성격’ 정도로 받아들인다. 특히 정치적인 뜻의 ‘시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정통이 아니라 이단(異端), 상하 관계를 무시하는 독불장군’인 사람으로 받아들인다고.

이런 일본 ‘시민단체’들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와 함께 등장해 정치인, 관료와 함께 각종 복지제도를 만들었다. 복지제도를 만들면 정치인은 표를 얻을 수 있고, 관료는 감독 권한과 예산 배정권한이 생기며 시민단체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시민단체’들은 최근 일본에 노숙자들이 증가하자 생활보호대상자를 내건 ‘비즈니스’로 돈을 벌고 있다.  

하시모토는 이런 시민운동·시민단체에 반대한다. 말 뿐이 아니었다. 그동안 일본 정치인들은 시민단체가 협박을 하면 ‘타협’을 했다. 하지만 노조나 일교조 등으로부터 ‘살해위협’까지 받은 하시모토는 ‘타협’하지 않았다. 이제는 오사카 시민들도 하시모토의 ‘시민단체’ 지원금  전면 백지화를 응원하고 있다.

하시모토가 원하는 일본은 ‘보통 국가’?

이런 하시모토가 늘 강조하는 것은 “合法でさえあれば道徳にしばられず競争すべきだとしている(합법이기만 하다면 도덕에 얽매이지 말고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의 변호사시절 홈페이지.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 아이돌'에 가깝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의 변호사시절 홈페이지.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 아이돌'에 가깝다.

하시모토는 조총련계에 대한 시각도 부정적이다. 그는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린 학교에 어떻게 일본 국민의 세금을 지원할 수 있는가”라는 말과 함께 오사카의 조총련계 고교에 대한 보조금을 끊었다. 오사카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하시모토는 그동안 어떤 정치인도 손을 못 대던 ‘부라쿠’ 지원금도 끊겠다고 약속했다. 부라쿠 주민 중 하시모토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의외로 반발은 심하지 않다고 한다.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에 대한 태도도 명확하다. “노래는 잘 못하지만, 열심히 국가를 부르는 모습에 감동한다”며 권투경기장에 들러 직접 ‘기미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국가가 갖는 의미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인간은 교육자가 될 자격이 없다”며 기미가요를 따라 부르지 않거나, 심지어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학교 교사들을 맹비난했다.

이런 하시모토가 2007년 12월 오사카 부 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자민당이나 민주당, 공산당, 사회당은 그를 멀리하며 공천을 주지 않았다. ‘기성 정치인’은 하시모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4년이 흐른 지금은 ‘오사카 유신의 모임’이라는 지역 정당을 이끌고 있다. 그의 후배가 오사카 부지사를 물려 받았고, 자기 스스로 그보다 낮은 오사카 시장이 됐다.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은 물론 자민당, 일본신당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야쿠자와 상부상조하며, 밤이 되면 게이샤를 옆에 끼고 여야가 함께 ‘국사(國事)’를 논하던 ‘기성 정치인’들 대신, 20대에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둔 젊은 정치인, 변호사로 TV에 출연해 명쾌한 논리로 개혁을 설파한 하시모토에 열광하고 있다. 하루 200~300건의 안건을 처리하는 그의 능력도 기성 정치인과 비교된다.

36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갖고 있는 하시모토의 영향력은 ‘무기력’에 빠진 젊은 세대들에게 더 크다는 점도 중요하다. 2008년 오사카 부 지사 선거 때 하시모토를 부라쿠 출신이라고 비난한 글이 인터넷에 오르자 수천 명이 달려들어 무차별 공격하기도 했다.

일본 일각에서는 하시모토의 ‘오카사 혁명’이 동북대지진으로 ‘일본의 중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도쿄 정치를 넘어서리라고 예상한다. 

하시모토는 ‘오사카 시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총선출마를 않겠다’고 공언했다. 일본 정계는 그가 총선에 출마할 때가 되면 나라 전체에 큰 돌풍이 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시모토의 궁극적 목표는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대접을 받는, 보통국가’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우리나라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하시모토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 Pacific Partnership)로 미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하시모토는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 더 이상 빚은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 무슨 책임을 지라는 것이냐”라고 반문한다. 하시모토는 반핵(反核)·비핵(非核)에 반대하며, 일본도 중국과 북한에 맞서기 위해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 우익도 조심스레 그에게 손을 뻗고 있다.

하시모토가 총선에 나서게 되면 당선은 물론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당선 후 2015년 정도에 내각제 대신 이원집정제나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하시모토가 지난 21일 "총선이 실시될 경우 우호정당과 함께 전국적인 공천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혀 그의 '국가 개혁' 행보는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

만약 하시모토의 ‘혁명’이 계속 성공하고, 세력을 갖춰 ‘개헌’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2015년 한미연합사 해체 후 그동안 주일미군 주둔을 이유로 국방분야를 홀대하던 일본이 북한과 중국에 맞선다며 본격적인 군비확충을 할 경우 우리나라는 ‘안보 샌드위치’나 ‘아태동맹의 계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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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말 실시된 오사카 시장선거에서 하시모토 도오루가 60%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일본 언론들이 그를 극단적인 주장과 독설을 펴는 포퓰리스트, 파시스트라고 비판해왔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최근의 신문 여론 조사에서는 54.8%가 하시모토의 국회 진출을 희망했다.

 젊은이들 중에는 "오사카가 아닌 국제적으로 정체된 일본을 바꿔줬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모토의 총리 당선까지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장 선거 당시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여야 의원들이 오사카를 수도 도쿄도(東京都)와 같은 도(都)로 승격시키려는 하시모토의 구상을 연구하고 협력하겠다고 표명하고 있다. 최대 야당인 자민당은 지난 14일 대도시 문제에 관한 연구회를 열고 오사카도(大阪都) 구상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자민당 의원들은 하시모토의 눈치까지 보고 있다.

 하시모토는 지방 중심 정당인 '유신회'의 대표로 뛰어난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 다들 무서워하고 있다.

 그는 원래 변호사 출신이지만 TV 탤런트로 더 알려져 있다. 지난 2003년 4월부터 2007년까지 인기 TV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그의 솔직한 발언이 인기를 끌었다. 인기에 편승해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 부지사에 당선됐다.

 한국에도 관심을 가져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해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영재교육의 현장을 시찰한 적이 있다. 시찰 후 차세대의 리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재교육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하시모토의 오사카도 구상은 오사카시와 오사카부(府)를 합병하고 10~12개 특별 자치구에서 이루어지는 오사카 수도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중 행정의 낭비를 줄이고 산업기반의 정비와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오사카도 구상뿐만 아니라 시대에 맞는 구상도 발표하고 있다. 그 하나가 탈원자력발전소다.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관서지방의 자치단체와 협력해 새롭게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관서지방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대의 공약은 공무원 개혁이다. 오사카시는 비슷한 규모의 인구를 가진 나고야, 요코하마에 비해 공무원 수가 많고 월급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면 시에서 채용된 버스 운전기사의 평균 월급이 민간업체의 2배에 가깝다. 학력을 속이고 채용된 직원이 400명 이상인 것도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하시모토는 인사관계를 엄격히 해 일할 의욕이 없는 직원의 월급을 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고도 할 생각이다.

 노조가 반대하고 있지만 하시모토는 철저히 대처해 나갈 태세다.

 하시모토는 이러한 개혁을 통해 오사카를 바꿔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오사카는 에도 시대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 중심이었다. 오사카는 일본의 부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이후에 파나소닉 등 오사카에 있던 기업들이 대부분 본사를 도쿄로 옮겼다. 그 후 범죄가 늘고 인구는 감소했다. 오사카시의 도 승격에는 지방자치법을 비롯한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는 등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만약 실현되면 메이지 유신 이후 계속된 지방자치제도의 개혁이 실현된다.

 하시모토는 정치적인 적을 '바보'라고 부르고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 기자의 트위터에서 본명으로 공개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의 하시모토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그러나 하시모토가 일본을 바꿔줬으면 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사카시 선거에서 하시모토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특히 하시모토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대조적인 면이 있다.

 노다 총리는 주변에 배려는 잘하는 편이지만 강한 개성이 없고 일본의 소비세 개혁이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있어 별다른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하시모토의 정치적 지명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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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고이즈미’ 42세 하시모토 “일본정치에 독재 필요”
[중앙일보] 입력 2011.11.05 00:06 / 수정 2011.11.05 00:43

“오사카 시장과 일 못하겠다” … 지사직 던지고 시장 출마 파격

하시모토 전 오사카부(府) 지사
‘젊은 고이즈미’ ‘제2의 오자와’.

 요즘 일본 정치권의 최대 화제 인물인 하시모토 도오루(橋下徹·42·사진) 전 오사카부(大阪府) 지사를 일컫는 말들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처럼 카리스마가 강한 하시모토 전 지사를 두고 일각에선 ‘독재자’로 폄하한다. 하지만 리더십 부재로 고민하는 일본에서 모처럼 강한 지도자가 등장했다는 엇갈린 평가도 만만치 않다.

 하시모토는 지난달 말 오사카부 지사직을 내던졌다. 툭하면 충돌하는 히라마쓰 구니오(平松邦夫·62) 오사카 시장과는 같이 일하기 힘들다며 이달 27일에 치러지는 오사카 시장 선거에 직접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곤 오사카시(市)와 사카이시(市) 등으로 이뤄진 오사카부(府)에서 시(市)와 부(府) 단위 행정구역을 없애고 오사카도(都)로 단순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같은 사업을 이중으로 벌이는 비효율을 근본부터 뜯어고치기 위해선 도쿄도()에 이은 제2의 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자신이 한 단계 격을 내려 오사카 시장이 된 뒤 ‘오사카도’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시’를 없애기 위해 스스로 시장이 되겠다는 역발상이다. 대신 오사카부 지사 보궐선거에는 자신의 최측근을 내세웠다.

고이즈미 전 총리
 하시모토의 거침없는 언동은 ‘하시모토류(流)’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는 “지금 일본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독재”라고 말했다. 오사카도 구상에 반대하는 기존 정치권을 향해선 “(이번 선거는) 여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과의 대전쟁이다. 이걸 피하면 안 된다. 하지 않으면 ‘결단력이 없다’고 비판하고, 하면 ‘독재자’라고 비난할 것이다. 어차피 비난당할 바에야 하고 비난받는 쪽을 택하겠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아사히신문은 4일 “절규하는 듯한 연설, ‘저항세력’을 만든 뒤 이를 비판하는 정치수법은 우정민영화를 추진한 고이즈미 전 총리를 방불케 한다”고 비교했다.

 하시모토는 변호사 시절 오랫동안 법률상담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명도를 쌓은 뒤 38세이던 2005년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서 당선됐다. 취임 일성으로 직원들 앞에서 “당신들은 지금 파산회사의 종업원”이라고 몰아세운 뒤 공무원 인건비와 각종 단체 보조금 삭감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만년적자에 허덕이던 오사카부는 그의 취임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여야와는 거리를 둔 ‘오사카 유신(維新)의 모임’을 구성, 지난 4월의 오사카 지역 지방의회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넘는 약진을 보였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일본의 총리는 (국민이 직접 뽑는) 공선(公選)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론을 반복, “다음 단계로 총리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사상적으로는 극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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