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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dead drunk last night and I don't quite remember how I got home."

이것은 필자가 대학 1학년 때 학원에 나가 배우던 표현 중 하나입니다. 교재는 프린트였고, 주로 선생님께서 따라 말하는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점점 더 빨리 발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수강생들은 그것이 암기가 되고 나중에 이를 그대로 써먹거나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이런 실용적인 표현들을 열심히 암기하여 대뇌 회로에 저장해 두면 나중에 필요할 때 튀어나올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영' 학습자 여러분, 지금 회화를 배우고 싶어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필자의 짐작으로 여러분들이 취할 대표적인 일곱 가지의 유형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본인은 어떤 유형으로 공부해왔는지 혹은 어떤 유형을 선호하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유형1> 자신의 수준에 맞는 회화교재나 표현사전을 사서 표현을 들으며 암기한다.

<유형2> 모국어를 습득할 때처럼, 많이 들으면 말할 수 있다는 설(?)을 따라 회화 테이프를 수 십 회 반복해서 듣거나 AFKN 청취, 외화보기 등 대부분의 시간을 듣기에 투자한다.

<유형3> 서두에서 소개한 필자가 경험했던 방법처럼 많이 듣고 따라 발음 연습을 한 다음 회화연습을 한다.

<유형4> 문법을 알면 수많은 문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문법책부터 암기한다.

<유형5> 단어를 알아야 말할 수 있으므로 우선 단어공부부터 하고, 그 다음 문법을 공부한다. 그리고 나서 회화에 도전한다.

<유형6> 언어는 4 skill을 동시에 통합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따라 듣기/읽기/말하기/쓰기/문법/어휘를 동시에 학습한다.

<유형7> 일단 부딪쳐본다. 회화 학원을 나가거나 원어민을 만나 말을 하면서 말하기를 배운다.


이제 위에 소개한 방법들을 한 가지씩 분석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유형 1> 암기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암기한 것은 대뇌에 저장된 지식일 뿐입니다. 필요한 시기에 자동적으로 튀어나온다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암기를 통한 암기 대신 사용을 통한 암기가 필요합니다.

유형 2> 듣기는 청각인상(sound image)을 대뇌에 저장할 뿐입니다. 듣기를 많이 한다고 회화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회화체가 아닌 AFKN 방송의 입력은 회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회화를 위해서는 회화체 dialogue를 들어야 합니다.

유형 3> 듣고 따라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은 회화 연습이라기보다는 발음/강세/리듬/억양/정상 속도 이상에서 나타나는 연음, 동화, 탈락 등의 발음 변화 현상 등을 익히는 훈련에 가깝습니다. 이런 것은 회화를 위해 꼭 거쳐야 할 과정이기는 합니다.

유형 4> 문법을 알면 수많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사실이 아닙니다. 충분한 planning time을 가지고 영작을 할 경우에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회화는 거의 자동적으로 튀어나와야 하므로 문법을 잘 안다고 회화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영작의 경우도 다듬어진 짧은 예문으로 익힌 문법은 실제 essay 등을 쓸 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Essay를 실제 여러 편 써 봄으로써 서서히, 조금씩 덜 틀리게 됩니다.

유형 5> 오랫동안 영어와 담을 쌓았던 분이라면 과거 공부했던 쉬운 어휘/문법 교재를 한 번 훑어보며 brush up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어휘/문법의 기초가 된 분은 바로 회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법6> 말하기가 급하면 말하기에 집중하십시오. 다만 말하기를 하면서 심하게 부족한 부분은 간단히 보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방법7> '다시영' 학습자들 중 어휘/문법/표현의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은 바로 이 방법을 택하십시오. 어떤 표현을 실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해보지 않으면 암기해 두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휘가 부정확하고 문법적으로 틀리더라도 전혀 개의치 마십시오. 실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영어회화가 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원어민조차도 틀려가면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무엇이든 틀리지 않고는 절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틀리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호작용인 meaning negotiating이 활발히 일어납니다. 자전거 타기든, snow board 타기든 약간의 설명을 듣고 시범을 본 다음엔 자신이 직접 해보는 것이 가장 빠르게 배우는 방식입니다.

과거 영어 교육의 원리는 문법 및 표현을 제시(presentation)하여 지식을 먼저 축적하고, 이를 연습(practice)시킨 다음, 실제 표현(production)해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먼저 표현(production)해보게 합니다. 이를 통해 학습자가 무엇을 못하는지, 무슨 지식이 필요한지를 파악한 다음 이를 제시하고, 연습하고, 그리고 수정하는 방식이 더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는 Learning by Doing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 방식을 적극 권합니다. Speaking을 해보는 그 자체가 어휘, 문법, 표현을 익히는 적극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speak to learn how to speak' 즉, 말할 수 있기 위해서 말하라는 논리를 저는 지지합니다.

하지만 speaking을 늦추자는 주장에도 귀담아 들을 만한 점들은 있습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말을 하려고 하면 심리적으로 좌절감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틀리는 것에 대해 심하게 주눅이 드는 사람은 먼저 연습을 좀더 하고 말하기를 시도하십시오.

그럼 초급 수준의 '다시영' 학습자는 어떤 방식으로 speaking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학원의 기초 영어 회화반이 무난합니다. 강사는 일반적으로 원어민이 좋지만, 발음이 괜찮고 수업 진행을 재미있게 잘한다면 한국인 강사도 상관없습니다. 자격있는 강사는 teaching의 이론과 기술, 경험이 풍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습자 중심 수업이 되어야 하고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는 강사여야 합니다. 틀린 부분을 너무 자주 많이 지적하고 고쳐주는 강사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좀 틀리더라도 의미만 통할 정도면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강사가 좋은 강사입니다. 정확히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조금씩, 서서히 향상되고 비교적 나중에 터득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한 실제 의사소통의 기회(opportunities for use) - 이것이 영어 회화를 잘 할 수 있기 위한 확실한 point입니다.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것 같습니까?"

'다시영' 학습자가 영어 회화학원에 나갔을 때 수업 중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위에 제시한 우리말 문장을 영어로 말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다시영' 초급학습자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바른 영어표현이 튀어나올 리는 없습니다. 대개는 머릿속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말에 대한 영어 어휘를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 who, '차기 대통령' -> next President,
'당선되다' -> be elected; win the election
'...할 것 같습니까?' ->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guess; think; will be

그 다음은 대뇌 속의 문법 data base를 검색해야 하겠지요. 그래야 이들 단어들을 완전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대개 다음과 같은 process가 진행되겠지요.

1. 의문문이 되어야 하니까 동사와 주어의 위치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2. '당선되다'이니까 수동태가 되어야 하겠군.
3. '차기 대통령에'의 '...에'를 영어로 뭐라고 해야지? At일까 아니면 '차기 대통령으로'란 뜻이니까 (as) (the, a) next President일까?
4. '...할 것 같습니까?'이니까 시제는 미래나 현재가 되어야 하겠군.

대개는 이상과 같은 일련의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다시영' 학습자들의 머릿속에서 분주히 진행됩니다. 이쯤 얘기를 하고 나면 '다시영' 학습자들 중에는,

"역시 회화를 잘 하려면 어휘와 문법을 먼저 공부해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군요.
그러나, 흔들리지 마십시오.

'독해 먼저, 듣기 먼저' rule을 꿋꿋이 지켜나가세요.
다시 말해 '먼저 많이 읽고, 많이 들으십시오'. 이를 통해 어휘와 문법을 해결하십시오.

어휘와 문법의 기초가 너무 약해 '독해 먼저, 듣기 먼저' 식으로 할 수 없는 분들은 어떻게 하느냐구요? 이런 분들은 어휘책과 문법책을 별도로 선행 학습하거나 병행 학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교재의 선택은 부담이 없는 중학생용 수준 정도를 선택하여 2-3회 반복 학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흔쾌히 공감이 안 가는 분이 계시면 필자의 '다시영' 칼럼을 1회부터 다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어휘 먼저, 문법 먼저'식을 고집하시면 위 우리말을 영어로 표현하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말하기(speaking)는 쓰기(writing)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대화 도중에 '단어를 찾고 다시 이들을 문법 지식을 동원하여 문장으로 조립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구(phrase) 단위나 절(clause) 단위로 대뇌에 입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다시영' 초급 학습자들은 대개 위의 경우에서처럼 어휘 검색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합니다. 막히면 창피해서 얼굴부터 붉어지며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때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이 중요합니다. 뻔뻔해져야 합니다. 이런 준비가 되었으면 배짱 좋게 다음 a.b.c.처럼 말하십시오.

순간적으로, '당선되다 -> be elected'가 연상 되지 않거나, 수동태 만들기가 아직 체화(體化;internalize) 되지 않은 '다시영' 학습자의 경우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큽니다.

a. Who become next Korean President?
b. Who will elected as next President?
c. Who will be/become the next president in/of Korea?(of가 맞음)
d. Who will be elected next Korean President?(next 앞에 as/관사 등이 오지 않음)
Who will win the presidential election, Mr. Lee or Mr. Nho?
Which candidate do you think will win the coming presidential election?

여기서 시제/관사/동사의 적절성 등은 전혀 신경쓰지 마십시오. a.나 b.처럼 말하다가 차츰 c.를 거쳐 d.에 가까워집니다. 이런 정확성(accuracy)은 읽기와 듣기의 양이 쌓이면 저절로, 서서히 그리고 매우 나중에 해결됩니다.
이쯤 얘기를 하면 '다시영' 학습자들의 머리 속에는

"이렇게 틀린 영어를 마구 써도 되나요? 그러다가 틀린 영어가 몸에 배이면 어떡하지요?"

와 같은 불안감이 떠오를 지도 모르겠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필자가 앞 칼럼에서 조언드린 대로 자기 수준에 맞는 읽기와 듣기를 많이 하다보면 틀린 영어가 몸에 배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본 칼럼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다시영' 초급자의 말하기 훈련 원칙:

  1. 처음부터 '정확한 어휘, 정확한 문법'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자.
     생각나지 않는 것은 생략하고 생각나는 것만 가지고 대충 말하라.
     상대방은 상황, 세상지식 등을 이용해서 거의 다 알아듣는다.

  2. 얼굴에는 항상 '철판'을 깔고 뻔뻔스러워지자.
      마음놓고 틀리면서 말하자

  3. '검색과 조립' 방식을 지양하고 평소 구(phrase)나 문장(clause)
   단위로  대뇌에 입력하자.

이찬승씨의 교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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